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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진세칼럼]우화(羽化)
  • 안산신문
  • 승인 2022.11.16 15:53
  • 댓글 1
복진세<작가>

 한여름의 하루가 길게 늘어져 있다. 작열하던 태양도 열기를 식혀갈 즈음 한 가닥의 빛줄기가 수면 위를 애무하듯 스쳐 지나간다. 물결은 앙탈을 부리듯 이내 빛을 반사한다. 수많은 왕잠자리가 군무를 이루어 낮은 비행을 즐길 때면 낙조가 하늘을 물들인다.
 강가에서는 마른 가지에 수많은 왕잠자리의 유충이 기어 올라온다. 다리로 가지를 단단히 붙잡고는 온몸을 힘껏 흔드는가 싶더니 머리가 유충 속에서 탈피한다. 이내 꼬리를 빼내고 연약한 날개를 뻗어 햇볕에 말리고는 하늘을 향해 높이 날아간다. 왕잠자리의 우화(羽化)이다. 그 모습이 내 인생하고 닮았다.
 나의 우화는 사춘기 때 시작되었다. 그 시절 나는 특별한 목적 없이 보편적인 성공 의식을 가지고 본능이 시키는 대로 살았다. 성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보다 빠르게, 더 높게, 더 강하게”를 외치며 높이 날아올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살아왔다. 첫 비행은 여물지 못한 날갯짓으로 보기 좋게 강변에 내동댕이쳐졌다. 자존심을 잃고 방황했다. 정신 차리고 다시 날려고 준비했다. 젖은 날개를 말리고 알맞게 여물기를 기다려 날아올랐다. 드디어 자유를 누리며 멋진 비행에 성공하였다. 높이 날기도 하고 저공비행으로 수면 위를 스쳐 지나며 우쭐대기도 했다. 그러나 제대로 익히지 못한 비행 실력으로는 오래 날지 못하는 법이다. 이내 곤두박질치며 또 땅으로 떨어졌다. 이어 다시 날아오르다가 추락하기를 반복하며 이순(耳順)의 나이를 맞았다.
 어설픈 비행 실력으로 세상을 날아오른다는 건 모험 그 이상이었다. 추락의 쓴맛을 보고 나서 나는 부러진 날개를 어루만지며 비행계획을 수정하였다. 새로운 비행계획은 높이 나는 것도 아니요. 기교가 들어간 비행기술도 아니다. 그저 내 날개 근육의 정도를 파악하고 나에게 맞는 거리를 날 수 있도록 수정한 것이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성공의 기준을 나 자신에 맞추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고 나에게 맞게 계획을 변경하였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부모님은 이공계열에 진학하여 훌륭한 기술자가 되어서 빨리 돈을 벌기를 원하셨다. 내 적성과 재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시대적 유행에 맞추어 내 진로는 선택되었다. 이공계열의 수업은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하였다. 졸업 후 전공과는 무관한 적성에 맞지 않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했다. 예술대학에 진학하여 미술을 전공하고 싶었던 나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살다가 늦은 나이에 사진 공부를 하였다. 못다 이룬 꿈인 회화를 사진으로 대신하여 아쉬움을 달래며 살고 있다. 불혹의 나이가 끝나갈 즈음부터 시작한 인문학 공부는 내 인생의 오아시스였다. 틈틈이 내가 하고 싶었던 인생 철학을 익히며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였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작은 성공이라는 사실을 늦은 나에게 알게 되었다.
 성공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하여 성공하여야 하는지도 나는 몰랐다. 다만 무작정 성공하겠다는 의욕만 가지고 잠자리의 유충처럼 차가운 물 속이나 어두운 고치 속에서 탈피를 위해 몸부림쳐야만 하였다.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좌절감에 고개 숙여 떨기도 하였다. 부모님과 처자식을 부양하기 위해 무모하게 불나방처럼 불 속으로 돌진하여야만 하였다. 그 몸짓은 미친 무녀의 칼춤처럼 어설펐지만 나는 춤사위를 멈출 수가 없었다. 실패자를 향해 쏟아질 비난과 서릿발 같은 눈초리를 감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성공의 척도가 이룬 부의 양이나, 지위가 높고 낮음으로 가늠되어서는 안 된다. 성공이란 주어진 환경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욕심내지 않고 만족한 삶이 성공한 삶이 아닌가 생각하여 본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나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행복하다 할 수 있겠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후 늦은 나이에 진정한 성공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높이 오르려고만 한다. 한번 높이를 더해 한계까지 오른 사람은 도대체 내려올 줄을 모른다. 한번 높이 올랐으면 적당할 때를 기다려 내려올 줄도 알아야 한다. 높은 곳은 오래 머물기에 적당한 조건이 아니다. 높은 곳에서 안주하려고 하면은 자연조건은 그것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다. 내려오는 시기를 놓치고 높은 곳에서 절명하는 정치인이며 재벌들을 무수히 보아왔다. 그들은 높은 곳에서 자아도취에 빠져 좀처럼 내려올 줄을 모른다.
등산의 완성은 하산에 있다. 정상에 오른 후에 하산하지 못하면 실종사고이다. 적당할 때를 골라 안전한 곳으로 내려와서 지친 영혼을 달래고 노후를 즐기며 후세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남는 법을 모른다. 오로지 성공을 위한 방법만을 공부하였기에, 성공 후에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성공지상주의만 알고 살아온 나는 진정한 성공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왔다. 본인의 의지대로 살지 못하고 남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성공을 위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만족하지 못한 삶을 살아온 것을 후회한다.
 노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노래한다. 물은 막히면 돌아서 흐르고, 깊으면 채워서 흐른다. 물은 스스로 얼 때를 알고, 스스로 녹아 흐를 때를 알고 있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할 뿐 다투지 아니한다. 노자의 상선약수처럼 무위자연(無爲自然) 하는 생이 진정으로 성공한 삶이 아닌가 하고 뒤늦게나마 후회한다.
 왕잠자리는 몸 안의 체액을 모두 뱉어낸 후에 비로소 날아오른다. 높이 날기 위해서는 우선 비워야 한다는 사실을 늦은 나이에 알게 되었다. 높이 올랐다가 때가 되면 내려올 줄을 아는 생이 아름답다. 여생은 다투지 않는 흘러가는 물처럼 살아보리라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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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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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사임당 2022-11-17 00:07:13

    물처럼 바람처럼 산다는게 더 어려운게 아닌가 싶습니다 생긴대로 사는게 물처럼 사는건가요?ㅎ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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