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진세<작가>

예전의 시골집 부엌에는 낮은 부뚜막이 있었다. 처음에는 황토 흙을 물로 개어 쌓아올린 낮은 부뚜막이었다. 이후 아버지께서 시멘트로 높이를 키우고 말끔하게 다시 만드셨다. 좌측에는 큰 가마솥이 있었고 우측에는 작은 솥이 걸려있었다. 가운데는 구공탄을 사용할 수 있는 화덕도 만들었다. 요즈음 주방의 변화는 예전에 비해 가히 혁명적이다. 위생적이고 편리하고 똑똑하기까지 하다.
온 가족 하루의 시작은 부엌에서 부터 비롯된다. 작은 부엌에서 대가족의 먹거리를 모두 만들었다. 요즈음처럼 인스턴트식품이나 배달 음식은 없었다.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로 온 가족을 배불리 먹이는 일이 언제나 우선이었다. 소득은 높아지고 물질은 풍성하지만 예전만큼 행복한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셔서 가마솥에 물을 데워 놓으셨다. 우리들은 추운 겨울에도 뜨거운 물로 세수를 하고 어머니는 설거지며 주방 일을 하실 때 사용하였다. 초저녁에 밥을 지으면서 따듯하게 덮여놓은 방은 새벽녘에는 아랫목을 제외한 윗목은 한기를 느낄 만큼 추웠다. 아버지는 아이들이 춥지 않도록 매일같이 새벽잠을 설치시고 불을 지피셨다.
우리 세대의 부모들도 자녀들을 힘들게 부양하지만 부모의 권위는 예전 같지 않다. 자식을 위하는 마음이야 다를 바 없겠지만 예전의 부모처럼 멀리서 지켜보지 못하고 당장의 성적과 성공을 위하여 간섭하고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는 것이 원인인 거 같다. 나 자신도 믿고 지켜보지 못한 점을 후회도 한다.
어머니는 키질을 하여 쌀 속의 잡티를 날려 보낸다. 다시 조랭이를 이용하여 뇌를 골라내고 가마솥에 쌀을 안치고 물을 붓고는 나한테 불을 지펴 밥을 지으라고 하셨다. 뚝배기에 된장을 풀고 풋고추, 애호박, 표고버섯과 큰 멸치 몇 마리를 넣고 끓이면 찌개에서 고향 냄새가 난다. 채소는 모두 텃밭에서 재배한 것을 방금 준비하여 놓았던 것이다. 낯에 들과 산에서 캐 온 비름나물이며 냉이 등을 각종 양념에 버무려 나물 반찬을 만든다. 호박은 얇게 썰고 감자는 갈아서 들기름을 붓고서 빈 솥에서 동그랗게 지져내어 전을 만드신다. 배추김치며 동치미는 빠질 수 없는 필수 반찬이다. 구입해서 먹는 거는 생선과 고기 종류뿐이다.
부모님이 가족을 위하여 힘들게 음식을 만들고 메주를 쑤어서 저장식품을 만드는 것을 보면서 존경심이 드는 건 당연하다. 나물을 무쳐서 입안 가득 넣어주며 맛을 보라고 하실 때는 따뜻한 정도 느껴졌다. 요즈음은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 대신 즉석식품이나 배달음식으로 대신한다.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먹고 자란 아이들은 정서가 남다를 것은 뻔한 이치다.
학교에 다녀오면 어머니는 나를 불러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밥을 짓도록 하였다. 땔감을 아궁이에 넣고 불을 피우고 솥의 밥 물이 끓어넘치기를 두세 번 하면 불을 잦아들게 하여 밥이 뜸이 들기를 기다렸다. 솥 밖으로 내뿜던 수증기가 뜸 하여 질 때 다시 한번 마지막 불을 지피고 마무리를 하면 가마솥에 하얀 쌀밥에 맛있게 익어있었다. 밥이 다 익어 갈 때쯤 씨불을 꺼내어 그 위에 뚝배기를 올려놓고 토장국을 끓이면 구수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나는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일을 도와드리며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였다. 요즈음 아이들은 부모님과 얼굴 마주할 시간도 없고 부모님 일에는 관심도 없다. 오히려 마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용돈이 등이 필요할 때만 부모를 찾는다. 철저하게 개인주의로 빠져든다.
아버지는 농번기에도 좀처럼 쉬는 일이 없었다. 볏 짚을 엮어서 멍석을 만들거나 가마니를 짜서 다음 농사철에 사용하기도 하였다. 광주리도 만들고 닭이 알을 품을 수 있도록 둥지를 짜기도 하고 각종 생활용품을 볏짚으로 직접 만들어서 사용을 하였다. 겨울철에는 눈썰매를 만들어 주시기도 하고 방패연이며 팽이 등 우리들의 장난감을 직접 만들어 주셨다.
아버지는 맥가이버도 울고 갈 솜씨를 가지셨다. 장난감을 손수 만들어 주시며 우리들과 함께 놀아 주셨다. 사춘기 때에는 멀리서 지켜 보아주다가 쓰러지면 슬며시 손을 내밀어 주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좋았다.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것이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도 어른을 공경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며 살도록 무언의 교육을 하였다. 아버지가 외출하여 귀가시간이 늦어지면 배고품을 참으며 아버지가 오시기를 기다려야 했다. 어머니는 밥을 담아 놓은 주발을 아랫목 이불 속에 넣어 식지 않도록 하고, 부엌에서는 끓여 놓은 토장찌개가 식을까 봐 수시로 덮여 놓는다. 아버지가 오셔서 숟가락을 드셔야 비로소 우리들도 숟가락을 들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나름대로 엄격한 식사예절도 있었다. 먹으면서 소리를 크게 내거나 맛있는 음식을 독차지하려 하면 아버지는 불호령을 내리셨다. 가끔 특별식으로 김이나 생선 등이 올라오면 내 몫을 따로 덜어 주고서 나머지를 형과 누나가 먹도록 하였다. 형과 누나는 어린 나에게 생선의 뼈와 가시를 발라 먹이고 반찬을 골고루 먹이며 알뜰히 보살펴 주었다.
요즈음 생활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리 해졌다. 국민소득도 그 당시와 비교하면 300배 이상 좋아졌다. 하지만 높아진 소득만큼 행복도는 비례하지 않은 거 같다. 오히려 예전보다 살아가기가 힘들어졌다는 사람들이 많다. 매년 자살하는 인구는 세계 1위이다.
부모들은 아이들 교육에 평생을 바치고도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예전에는 없던 캥거루 족이라는 단어도 생겼다. 취업도 결혼도 하지 않고 부모 옆에서 기생하면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집 밖은 위험해”라는 신조어는 실소를 자아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독립시켜서 혼자서 살아가도록 하는 서구사회의 풍습하고는 사뭇 다르다. 서구에서는 대학도 본인이 알아서 다녀야 하고 결혼도 스스로 하여야 한다. 부모와 자식은 성장과정을 마치면 각자의 가정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살아간다. 부모의 재산도 자식에게 물려주는 법은 없다. 철저히 기부하여 사회에 환원하고 생을 마감한다. 부의 세속은 자식을 망치게 한다는 것 을 모르는 거 같다.
이렇게 서구사회처럼 사는 것이 자연의 이치와 같다. 자연의 동물들은 어릴 적에는 목숨을 걸고 자식들 보살피다가도 성장기가 끝나면 냉정하게 독립을 시킨다. 철저히 독립적인 개체로 살아 가게 하기 위해서이다. 어릴 적부터 인성교육을 시키고 인문학 교육을 부활을 시켜야 한다. 성인이 되면 가차 없이 독립을 시켜서 혼자 살아가도록 하여야 한다.
노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즐기라고 하였다. 자연에 순응하면서 자연을 닮은 삶을 사는 것이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다. 다음 생에는 무위자연을 실천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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