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경영학 박사>

“만일 남자에게 긴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는냐?(고전11:14)”2000년전에 고린도에 있는 교회에 보낸 바울의 편지의 한 구절이다. 남성의 머리는 짧고, 여성의 머리는 길어야 한다는 것은 당시의 관습이고 문화였다. 바울은 아마도 교회가 사회적 규범과 질서를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권면하고 있다. 사람은 본성이 부끄러움을 아는 존재이다. 
깨끗하고 정직하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염치라고 한다. 염치(a sense of shame)는 인간관계의 덕목이다. 염치의 반대말은 창피한 줄 모르는 뻔뻔스러움(Impdent)이다. 염치에 대한 생각은 동서양에 차이가 없다. 사람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에서 죄를 지은 인간이 하나님을 피해 숨었다. 하나님은 묻는다. 네가 왜 숨었느냐? 죄를 지은 것을 알게 되어 부끄러워서 숨었다고 대답한다. 부끄러움은 양심이다. 맹자도 말하기를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고 했다.
  조선시대에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이라는 시인이 있었다. 조선 숙종 15년(1689년)에 후궁인 숙원장씨(淑媛張氏)의 소생을 세자로 삼으려 하는 것에 반대한 서인들이 내침을 당하고 남인들이 정권을 잡게 된다. 이를 기사사화(己巳士禍)라고 하는데 당시 영의정이었던 김창흡의 아버지 김수항도 사사(賜死)되었다. 집안이 몰락하자 그는 한양을 떠나 전국을 유랑하다가 깊은 산 속에 우거했다.
그 때 쓴 시집 삼연집(三淵集)15권 갈역잡영(葛驛雜詠)에 당시 세태를 빗댄 시가 있다.“今日看廉恥(금일간염치),靑狵肚裏存(청방두리존),尋常櫟釜際(심상력부제),不欲向廚蹲(불욕향주준)”이를 해석한다면 “오늘날 보아하니 염치는 삽사리 뱃속에나 있네. 늘 제 밥그릇이나 긁을 뿐 부엌을 향해서는 앉지도 않네” 자기 것이 아닌 것을 탐하지 않는 삽살개가 오히려 인간보다 낫다고 말하고 있다.
  플라톤의 대화편에도 염치 이야기가 있다. 소크라테스는 제자인 크리티아스로부터 카르미테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디. 카르미테스는 어리지만 외모도 아름답고 생각도 현명함으로 명성이 자자하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두통을 앓고 있던 카르미테스에게 자기가 치료해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찾아가서 의도적으로 그의 집안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네가 정말 현명하냐고 단도 직입적으로 묻는다. 
심술궂은 질문이다. 네 현명합니다라고 으시되면 그 자체가 현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카르미데스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얼굴을 붉혔다. 그는 조용함으로서의 현명함과 염치로서의 현명함을 행동으로 보여 준 것이다. 플라톤의 신화집 첫장 미덕의 기원에는 신들의 창조이야기가 나온다. 신들은 인간들의 생존을 위해 공동체를 이루어 살게 했지만 인간은 국가를 경영하는 기술이 없어서 불의한 짓을 하고, 흩어지고, 서로 죽이기를 시작했다. 
제우스는 이렇게 두면 인간이 완전히 멸종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헤르메스에게 정의(dikȇ와 염치(aidǒs)를 가져다 주라고 했다. 공동체를 구성하고 우애를 맺는데 정의와 염치가 원칙이 되게 한 것이다. 헤르메스는 염치와 정의를 어떻게 나누어 주어야 하는지를 제우스에게 물었다. 제우스는 모든 인간들에게 나주어 주라고 했다. 
정의와 염치가 소수의 것이 되면 국가가 생길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염치와 정의를 나눠 가질 수 없는 자는 공동체의 역병(疫病)으로 간주하여 죽여 없애야 한다고 내 이름으로 법을 정하라고 했다. 온갖 염치없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오늘의 세태를 돌아보게 한다.
  공동체는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된다. 각 지체가 그 맡은 분량대로 활동함을 따라 몸이 자라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건설된다(엡4:15). 이런 시회적 상호작용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정의와 염치라고 할 수 있다. 정의는 공동체의 규범이고 질서이며 기준이다. 
이를 벗어났을 때 부끄러움과 수치를 느낄 수 없다면 공동체의 맴버십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기업이나 정치 또는 사회조직, 공동체 차원도 개인과 다르지 않다. 요즘 기업들은 ESG경영이 대세다. 친환경, 사회적 책임, 투명성의 가치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이윤 창출만이 부끄럽지 않는 성과라고 평가된다. 
개인은 사회공동체의 지체로서 각 자의 분량대로 주어진 역할과 기능이 있다. 일을 하다보면 길을 벗어날 수 있지만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부끄러움이 길을 돌이키게 한다. 특히 사회적 리더들에게는 필요한 덕목은 모두가 공유하는 사회적 가치를 존중하고 염치를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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