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니<부부상담사>

그녀는 한쪽 다리를 끌듯이 걸으며 상담소로 들어왔다. 자리에 앉아 조용히 있어도 한쪽으로 기울어진 그녀의 얼굴이 자주 움찔거렸다. 그녀가 말을 하면 참을성 있게 귀를 기울여야 했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아주 느리게 그녀의 입에서 빠져나왔다. 그녀가 말을 하면 그녀의 턱과 입술 근육이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그녀의 말 한마디는 턱과 입술만이 아닌 그녀의 머리 전체가 함께 흔들리는 수고 끝에 간신히 나오는 결과였다.
그녀와 함께 온 남자는 키가 크고 다부졌다. 나는 두 사람이 이혼한 지 이십여 년이 지났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여자가 키우는 아이가 문제였던 모양이었다. 아무리 자녀가 말썽을 피운다 해도 이혼한 부부가 함께 상담소를 찾는 일은 드물다. 여자는 남자에게 공세적이었다. 남자는 여자의 공세를 꿋꿋이 참으며 다음 회기에도 꼭 참석하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가 상담소에 다시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남자는 상담소를 꺼리는 부인을 위해 첫 방문에 동행만 한 것이었다.
여자의 엄마는 그녀에게 세상에서 네가 제일 귀하다고, 너는 전혀 꿇릴 것이 없다고 늘 이야기를 했다. 실제로도 그녀는 다른 형제자매들과 다르게 공주 대접을 받았다. 어찌 된 일인지 그녀는 엄마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정규 학교 과정을 거치지 않은 그녀는 좌절에 대한 사회적 경험이 거의 없었다. 부모가 주선한 안전한 일자리에서 짧게 일한 게 다였다. 그곳에서 전남편을 만난 그녀에게 결혼은 그야말로 도전의 연속이었다. 남자는 여자를 공주처럼 대해주지 않았고 시집의 식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부부들과 모임을 하고 돌아오면 여자는 남자를 들볶았다. 그들이 그녀를 하찮게 대접했다며 불같이 화를 내었다.
스포츠 센터에서 청소 일을 하는 그녀는 이제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귀하고 꿇릴 것이 전혀 없는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러면서도 이혼한 전남편과 아이들 문제로 통화를 하며 악다구니를 썼다. 통화를 마치면 정해진 순서처럼 아이들에게 제 아빠 욕을 퍼부어 댔다. 어느 날 나는 여자가 남편 욕을 하는 걸 듣다가 슬쩍 이렇게 말해 보았다.
“그래도 ㅇㅇ님은 참 행운아에요”
여자는 어리둥절 나를 쳐다보았다.
“그 남자가 ㅇㅇ님을 열렬히 사랑했잖아요? 가족들 반대를 다 무릅쓰며 ㅇㅇ님을 선택하였잖아요. 그런 사랑이 어디 흔한가요? 우리 세대에 그런 사랑 한번 없이 중매로 만나 아이들 낳고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렇지 않나요? 두 분은 서로 온 힘을 다해 사랑하고 사랑받으셨잖아요. 오래 가진 않았지만 이건 분명 축복이었죠. 세상엔 그런 사랑 해 본 적 없는 사람 많아요. 고마운 일이죠.”
그녀가 멈칫 동작을 멈추었다. 그녀의 눈이 영롱하게 반짝였다. 나는 그냥 의례적인 얘기를 한 게 아니었다. 자기를 공주로 여기는 세상 물정 모르는 여자를 사랑한 남자, 아이들과 전 부인을 위해 기꺼이 상담소에 함께 온 남자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 마음이 통했던 것일까, 여자는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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