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니<부부상담사>

영동 국악 박물관 앞 뜰에서 신기한 국화를 보았다. 꽃잎이 아주 작았다. 예쁘다. 쪼그려 앉아 꽃을 살피는 내 입에서 연신 감탄이 흘러나왔다. 그걸 보았는지 남편은 이튿날 그 앙증맞은 국화 화분을 집으로 보내주었다. 하나는 노랗고 하나는 보랏빛이었다. 플라스틱 화분에 담긴 꽃은 집에 두기에는 컸지만 놀랄 만큼 가벼웠다. 그래서 여기저기로 옮겨 놓기 좋았다. 화분은 주로 거실에 놓이는데 지금은 서재에 있다. 나는 화분을 곁에 두고 이 글을 쓰고 있다.
국화가 왔을 때 꽃은 봉오리 상태였다. 봉오리는 콩알만 한 크기였다. 지금은 구슬만 한 크기로 만개하였다. 아마 지금이 절정인 듯싶다. 두어 주가 흐르면 꽃은 서서히 시들고 이윽고 누렇게 마를 것이다. 한해살이를 마치는 것이다. 나는 그때쯤 국화를 농장으로 가져가 옮겨 심으려 한다. 국화는 봄이 되면 다시 싹을 틔우고 가을에 꽃을 피워 올릴 것이다.
죽었다가( 엄밀하게는 죽은 듯 보였다가) 다시 피는 꽃. 부활과 재생. 요즈음 이 국화가 미치도록 부럽다. 비가 조금씩 흩뿌리는 오늘 아침, 난 고대병원으로 가 자료가 담긴 슬라이드를 받아왔다. 큰 형부의 자료를 받아 고향으로 보내주기 위해서였다. 형부는 며칠 전 이곳 고대병원에서 폐섬유화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폐가 서서히 굳어져 기능을 멈추게 되는 병이었다. 진단 후 기대 수명이 삼 년에서 오 년이라는 중병이었다.
작년 크리스마스 무렵 아버지 생신이 있었고 그때 형부는 기침이 너무 심해 참석할 수 없었다. 정식으로 검사를 한 적은 없으나 우리 모두 코로나겠거니 짐작했다. 기침은 두어 달 지나며 서서히 멈췄고 올봄에 건강검진을 할 때만 해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언니가 형부의 숨소리가 예전과 달리 거칠어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즉시 검사를 해 고향에서 일차 진단을 받은 후 이번에 고대병원에서 최종 진단을 받은 것이다.
최종 진단을 받기 위해 병원을 오갈 무렵 형부는 내게 이렇게 물었었다. 형부는 내가 이 년 전 죽음에 관한 주제로 출간했던 책을 꼼꼼히 읽은 바 있다. 그러니 내 생각을 잘 알고 있었다.
“처제는 사후 세계가 있다고 믿어?”
그때만 해도 난 형부의 병을 가볍게 보고 있었다. 코로나 후유증 정도로 생각한 것이다.
“아뇨. 전 없다고 봐요.”
생각 없이 말이 툭 튀어나왔다. 지금은 그 말을 후회한다.
다시 묻는다면 형부가 믿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럼요. 모두 다시 만나 또 다른 생을 살아갈 거에요.”
농장으로 가 다시 싹을 틔울 국화처럼 우리도 하늘로 옮겨 다시 피어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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