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니<부부상담사>

농사를 짓기 시작해 이년이 지났을 때 알타리무가 정말 튼실하게 자랐다. 우리 식구가 먹고도 한참 남을 양이라 그것을 팔고 싶었다. 그때만 해도 한창 농부 흉내를 내고 싶을 때였다. 커다란 비닐봉지 세 개에 알타리무를 꽉꽉 채워 남편이 소개한 식당에 팔았다. 단돈 오천 원에 팔았으나 영수증도 주고받았다. 내 손으로 수확한 농작물을 판매하는 것은 웬일인지 농부의 정체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느낌이었다.    
작년 1월에 장편 소설의 첫 문장을 쓰고 그해 10월 즈음에 초고를 마쳤다. 두 친구에게 내 초고를 보냈다. 한 친구는 작가였고 다른 친구는 작가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작가 친구는 내가 상처를 받을까 봐 작품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 조금 소설 외적인 이야기를 하였다.
“소설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너를 다 드러내 보이는 건데 그걸 감당할 수 있겠어?”
내 소설의 제목은 <인터뷰>이고 부제는 ‘우리 섹스 이대로 괜찮을까?’였다. 성적 불만이 있어도 파트너에게 그것을 잘 얘기하지 못하는 세 여자가 이야기를 끌고 간다. 그러니 이 친구가 괜한 말을 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모든 글은 작가의 경험이면서 또 그것이 아니기도 하다. 어디까지나 픽션인 것이다. 포르노가 판치는 세상에서 이 정도의 글쓰기가 위태로워 보일 수 있다는 게 납득되지 않았으나 난 그녀가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섹스 토크에 대한 억압. 바로 내 소설의 핵심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친구도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릴 수 없는 소리를 했다.
“너는 왜 등단하고 싶은데?”
그녀도 오랫동안 등단의 문을 두드리고 두드렸었다. 나는 그녀의 말을 고깝게 여기지 않았다. 그녀가 불교에 심취한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눈으로 보면 등단 곧 이름을 얻는 일은 헛되고 헛된 것이었다.
내 예상대로 퇴고하는 내내 수많은 용( 나를 깎아내리는 내 자아)이 길목 길목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 가운데 가장 센 놈이 바로 지금 내 눈앞에 있다. 성공한 웹 소설 작가로 한예종에서 강의를 하는 조카가 있다. 그녀는 내 책이 삼사십 대의 여성에게 아주 잘 먹힐 거라며 칭찬해 주었다. 첫 문장을 읽으면 앉은 자리에서 한숨에 다 읽을 수 있는 글이라고도 했다. 보고 배울 수 있는 게 많아서 좋다고도 해 주었다. 그녀의 칭찬에도 불구하고 나는 올봄부터 지금까지 온갖 공모전에 응모하여 다 떨어졌다. 보름 전에도 나름 경향을 보고 선정한 십여 개의 출판사에 일제히 원고를 보냈으나 죄 퇴짜 맞았다.
“작가는 천성적으로 관종이에요. 누군가에게 글을 보이고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게 숙명이죠.”
조카는 죽어라 제 글을 발표하지 않으려 드는 학생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고 했다.
“나는 글로 인정받고 싶어.”
왜 등단하고 싶은지 묻는 친구에게 나는 이렇게 답했었다. 지금 나는 문 앞에 애써 키운 알타리무를 쌓아두고 있다. 오천 원만 준다면 어디든 납품하고 싶은데 어느 식당에서도 물건을 사려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식당을 차려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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