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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김(Resistance)의 미학
  • 안산신문
  • 승인 2024.02.07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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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경영학박사>

  ‘지렁이도 건드리면 꿈틀거린다’약자라고 해도 부당한 일에 처하면 가만히 있지 않고 저항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저 꿈틀거릴 뿐 대부분 저항도 제대로 못하고 천적의 먹이감이 된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이다. 저항하는 것을 속된 우리말로 개긴다고 한다. 개김은 억압이나 부당함, 무시함에 대한 자기방어기제이다. 
개기다는 2014년에 새로운 표준어로 채택이 되었다. 속어로 쓰이다가 제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개김은 약자 즉 힘이 없는자가 죽음을 각오하는 유일한 방어수단이다. 개김에는 몇가지 요소들이 작용한다. 거부(Rejection)와 버팀(Buttress),저항(Resistance)이다. 거부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버팀에는 지속할 수 있는 용기와 끈기, 저항에는 적절하고 합리적 대안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무모할 뿐이다. 
개김은 절대적 권력에 대한 합법적인 투쟁이 가능하지 않을 때 쓰는 꿈틀거림이다. 일본에 저항했던 삼일독립운동, 독재에 저항한 4,19혁명, 영국의 지배에 저항했던 인도 간디의 저항, 미국에서 마틴루터의 흑인 인권운동이 개김이라고 할 수 있다. 저항은 증오( Hated)가 아니다. 층간 소음이나 위험이나 피곤에 처했을 때 인간의 신경은 팽팽하게 긴장되면서 격렬한 감정 증오에 빠져들기 쉬운 상태가 된다. 
증오는 몹시 미운상태이다. 저항은 미움이 아니라 사랑이 기반에 깔려 있다. 저항은 기득권을 지키거나 욕망을 위한 질 낮은 트집이나 떼가 아니다. 공익을 위한 적극적 사랑이다. 요즘 범죄를 저질러도 인권을 앞세워 공권력에 저항하여 개긴다. 명분이 없다. 떼쓰고 적당히 우기면 사는 수가 생긴다고 여기는 걸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나는 나의 스승을 사랑하지만 진리를 더 사랑한다’고 말했다. 권위에 대한 맹목적인 미신을 막기 위해서 옳음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공개적으로 권위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저항이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현실은 정당한 의심과 저항의 역사가 낳은 산물이다.“개기는 인생도 괜찮다”를 쓴 단국대학교 영미인문학과 오민석 교수는 “개김은 무턱대고 반항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일반화된 통념에서 벗어나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본인만의 다른 시선과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보수니 진보니 구분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이미 굳어진 관행이나 제도는 보수의 영역이고 이에 대해 정당한 의심을 갖고 새롭게 개선하려는 것이 진보이다. 유대인에게는 사회적 책임, 정의로운 사회, 평화스러운 세상, 환경보호, 교육의 근간에 티쿤올람(Tikkun Olam)정신이 있다. 티쿤올람은 히브리어로 ‘세상을 고치다’라는 뜻이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저항하는 믿음을 의미한다.    
루터교회 김주훈 목사는 개신교도를 뜻하는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를 개김이라고 표현했다. 프로테스탄트는 1529년 스파이얼스 회의에서 로마카톨릭교회의 교리 및 제도와 생활의 개혁 운동을 지지하는 독일의 소수파 군주들이 로마카톨릭을 지지하는 다수파 군주들에 의해 통과된 결의에 항의서(protest)를 제출한 것에 연유한다. 당시 종교개혁자들은 로마 교황청의 권위를 의심했다. 
그들은 교회의 제도적인 통제와 두려움으로 신앙을 다스리면서 부수적으로 많은 독일의 돈을 성베드로 성당의 금고로 계속 가져갔던 참회제도로부터 자유스러워지기를 원했다. 교회 권위주의 체제에 저항하고, 전통과 관습에 질문을 던지며, 그 질문지로 소통하고, 그 소통의 힘으로 교회와 사회를 변혁하는 새로운 공동체로 권위에 대한 순종과 믿음이 아니다. 권위에 대한 믿음을 믿음의 대한 권위로 바꾸는 것이 프로테스탄트 정신이다.
  유혹의 기술,  권력의 법칙 등 인간 내면의 충동과 동기를 파악하는 지적인 책을 쓴 미국의 작가 로버트 그린(Robert Greene,1959~)은 ‘인간 본성의 법칙’에서 공격성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했다. 개김은 인간이 가진 공격성에서 나온다. 공격(Aggression)은 라틴어의‘앞으로 내딛다’라는 뜻이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거나 무언가를 만들어내거나 변화시키려고 할 때 우리는 바로 이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다. 개김은 수동적 공격성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개김은 무력감에서 온다. 인간은 무력감 때문에 고민하고 괴로워한다. 우리는 의지를 가진 동물로서 자유를 위해 권력을 갈망한다. 
권력욕이 반사회적이거나 사악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나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존재라는 것에 대한 자각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반응이 개김이다. 기업이나 공동체에서 힘을 가진자는 이런 구성원들의 개김을 눈치채야 한다. 개김의 이유 대해 바로 반응해야 한다. 그런데 이 개김을 역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구성원들의 아픔과 상처진 마음을 부정적 개김으로 가스라이팅하는 것이다. 더 옳고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회적 리더들은 낡은 관행과 제도적 모순을 깨는 개김에 앞장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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