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니<부부상담사>

유기견을 구조하는 데 열심인 후배가 있다. 그녀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개를 입양해 달라고 조르곤 한다. 후배의 호소가 사람들에게 잘 먹히는 편은 아니다. 오히려 매번 그 사정을 듣는 게 부담스러워 어떻게든 그녀의 눈길에서 벗어나려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하는 짓은 꽃을 피울지 말지 알 수도 없는 척박한 땅에다 꽃씨를 마구 뿌려 놓는 꼴이었다. 이듬해에 아예 싹트지 않아도 할 수 없고 혹시라도 한두 개 고개를 내밀고 나오면 좋고, 뭐 이런 마음.
그녀의 호소가 늘 외면당하는 건 아니다. 뒤늦게 응답이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 선배는  마당 딸린 너른 집을 구한 뒤 대형 견 한 마리를 데려갔다. 다른 이는 직접 키우지 않아도 중간에서 누군가를 소개하여 결과적으로 유기견 두 마리의 목숨을 살렸다. 한 마리를 먼저 데려갔던 사람이 그 강아지가 외로워 보인다며 형제를 찾아 한 마리 더 데려갔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녀의 호소에 간접적으로 응한 적이 있다. 방학이 끝나 미국 학교로 돌아가는 딸 편에 유기견을 딸려 보냈다. 딸이 개를 데려가 그곳에서 기다리는 새 주인에게 건네주는 일이었다. 개를 키운 적이 있는 딸은 흔쾌히 이 일을 받아들였고 그녀의 친구까지 끌어들였다.
공항에서 개를 보내기 위한 절차는 시간이 걸렸다. 검역 확인서를 제출하는 등, 수속을 대행하러 온 사람은 개가 든 케이지를 두고 사라진 뒤 꽤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케이지 주변으로 구경하려 드는 사람들이 자꾸 몰려들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려도 이상하게 개들이 짖지 않았다. 아무리 훈련을 잘 받았더라도 이 넓은 공항에 이토록 많은 사람이 주위를 둘러싼다면 본능적으로 짖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이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약물을 투여했을 수도 있었다. 케이지에는 시간 맞춰 물과 음식이 나오는 장치가 있었고 두꺼운 패드가 깔려 있었다. 어두컴컴한 화물칸에 실려 열두 시간의 비행을 해야 하는 이들이 짠하게 느껴졌다.
딸에게는 셋 그녀의 친구에게는 한 마리가 맡겨졌다. 딸이 기내에 데리고 탈 작은 놈은 벌써 딸이 품고 있었다. 이놈도 비행기 안에서는 케이지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고 했다. 덩치가 커다란 세 놈은 철로 만든 튼튼한 케이지 속에 있었다. 군살 하나 없는 늘씬한 몸매에 짧게 깎아 까맣게 반들거리는 솜털. 한눈에도 누구나 탐낼만한 녀석들이었다. 나는 케이지 옆에 바싹 쪼그리고 앉아 이들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당당한 체격과는 어울리지 않게 순박한 눈망울이 어딘지 모르게 조금 슬퍼 보였다.
이렇게 늠름한 녀석들을 키우다 함부로 버린 사람들. 그리고 이 멋진 녀석들이 죽을 위기에 처하자 이들을 구하기 위해 나선 후배 같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알고 보니 후배는 죽을 위기의 유기견을 구하고 입양 보내기 전까지 모든 비용을 다 감당하고 있었다. 임시 보호자를 찾아 위탁 비용을 대고 비행기에 태워 보내는 일체 비용을 기꺼이 감당하고 있었다.
세상은 이런 측은지심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지탱된다. 이런 사랑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후배가 참,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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