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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Pain)의 미학
  • 안산신문
  • 승인 2024.02.21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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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경영학박사>

  인간의 삶은 어느 시대나 예외 없이 고통스럽고 황폐했던 것이 분명하다. 인류의 역사이래 전쟁과 가난, 전염병, 자연재해는 멈춘적이 없다. 최근에 인류는 코로나19 전염병,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일본의 지진, 세계 도처에서의 홍수와 산불, 폭설 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쾌락주의 철학자 에피쿠로스(Epicurus. BC341~271))는 “하나님이 선하다면 자신이 만든 모든 피조물들에게 완벽한 행복을 주고 싶어 할 것이며, 하나님이 전능하다면 그 소원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피조물은 행복하지 않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선하지 않은 존재이거나 능력이 없는 존재, 또는 선하지도 않고 능력도 없는 존재일 것이다”라는 역설을 통해 고통의 문제를 가장 단순하게 질문했다. 신이 존재한다면 이런 인류의 악과 고통에 침묵하는 것일까?
  19세기 독일의 염세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는 “산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다. 오늘은 단 한 번뿐이다. 우리의 모든 불행은 혼자 있을 수 없어서 생긴다. 돈은 인간의 추상적 행복이다. 따라서 더 이상 구체적으로 인간의 행복을 즐길 능력이 없는 자는 자신의 마음을 온통 돈에 쏟게 된다.”고 했다. 
그는 삶은 근본적으로 고통스러운 것이며 이 고통은 의지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삶을 생로병사가 되풀이되는 고해로 보았다. 석가모니도 인간의 태어남, 늙음과 병듦, 죽음은 피할 수 없다고 했다. 오히려 이것들은 세상에 보내진 천사라고 했다. 생노병사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다면 이 세상은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사상가인 파스칼(Pascal, Blaise,1623~1662)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매일 먹고 또 잠을 자지만 지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림과 수면이 새로 오기 때문이다. 만약 평화와 행복만이 계속된다면 우리의 정신은 단박에 지쳐버리고 말 것이다. 고통은 정신의 양식이다. 사람에게 고통이 없다면 극히 무능력 상태가 오고 말 것이다.”
  그 어떤 말이나 이론도 지금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위로도, 도움도 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고통의 원리를 이해하면 극복하는데 소망을 가질 수 있다. 하버드대학교의 정치철학자인 마이클 센델(Michael J. Sandel, 1953~)은 완벽에 대한 반론에서“삶을 주어진 선물로 인정하는 것은 우리의 재능과 능력이 전적으로 우리 행동의 결과가 아니며 완전히 우리의 소유도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세상의 모든 것을 우리가 원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다.”하고 했다. 신은 만물을 창조할 때 생명을 부여했다. 생명은 그 기원을 과학으로도 명확하게 밝힐 수 없는 신비적 현상이다. 생물학자들이 말하는 생명을 지닌 유기체의 공통적인 특징은 성장과 증식, 유전물질의 소유, 세포로 구성, 물질대사와 에너지 생성이라고 한다. 엄밀하게 보면 모든 생물체는 원자들의 집합인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의 세포수는 60개조 정도라고 한다. 생명은 생존을 위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생존하려는 욕구를 가졌는데 이것이 진화의 원동력이 된다고 한다. 세포는 진화를 위해 유전적 돌연변이가 자연스럽게 선택된다고 한다. 이런 진화의 과정은 고통이다. 변화에는 고통이 따른다. 인간은 고통이 생명을 살리는 기제로 사용되어 스스로 진화되어 온것이다.
  인간은 때로 고통을 선택함으로 쾌락을 느낀다. 히말라야 등반에는 극한 추위와 목숨을 담보한 위험과 인고의 고통이 따르지만 산을 정복했다는 최고의 쾌감을 얻는다. 모든 스포츠가 거의 그렇다. 고통을 자초한다. 최고를 위한 인간의 노력은 고통이 당연하다. 발레리나의 발은 우아하지 않다. 고통의 흔적이 그대로 남는다. 레전드는 고통의 퍼즐들이 이루어낸 예술이다. 성장통을 통해 아이는 자란다. 산모의 해산의 고통이 자녀 출산의 기쁨을 누린다. 만약 여인이 해산의 고통이 없었다면 아이에 대한 모정을 상상할 수 없다. 
농부가 땅을 갈고 씨뿌리고, 잡초를 제거하고, 물 주고, 거두는 노심초사의 고통이 없었다면 수확의 기쁨과 보람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이다. 뜻한대로 되지 않는다. 갖은 장애를 겪고 성사했을 때의 감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견디어 내고 이겨낼 수 있는 자기 회복력과 창발성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고통을 줄일 수 있는 경우는 많다.
 대부분의 고통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서 유발된다. 정치, 사회적 리더들의 욕망이 대중을 고통에 빠지게 한다. 갈등을 조장하고 생각과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 수 있다. 대중의 고통을 완화하고, 고통의 미학을 창조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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