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니<부부상담사>

한가한 주말에 물왕 저수지 산책로를 걷고 있었다. 호수 둘레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에는 추락 방지용 난간이 있고 나무 바닥이 깔려 있었다. 산책로가 잠시 끊기고 비포장 도로가 나오는 구간이 있었다. 몇몇의 가게가 늘어서고 줄줄이 자동차가 세워진 흙 길이었다. 대형 스피커에서 트로트 음악이 흘러나와 우리 귀를 때렸다. 그 소리의 출처는 가게도 까페도 아니었다. 조그만 밭에 딸린 허름한 창고였다. 스피커의 위치가 중요했다. 밭을 향하지 않고 산책로를 보고 있었다. 창고 안도 아니고 도로에 접한 곳에 놓여 있었다. 창고에도 밭에도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오직 음악만이 저 혼자 재생되며 그 주변의 공기를 마구 휘젓고 있었다. 내 발 아래에서도 미세한 진동이 느껴지는 듯했다.
비슷한 일이 또 있었다. 차를 세차하러 나선 길이었다. 설이 코 앞이라 그런지 세차장은 몹시 붐볐다. 의외로 고객 대기실에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세차하러 갈 때면 꼭 읽을 거리를 가져간다. 삼사 십 분 동안의 무료함을 견디기 위한 방책이었다. 책에 한창 빠져들려는 즈음 누군가 들어오는 기척이 나고 그 기척은 나와 탁자를 마주한 소파에서 멈췄다. 곧 그 사람의 휴대폰에서 낭랑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거칠 것 업는 소리라니. 여당 입장에서 정치 평론을 하는 유튜브 방송이었다. 이럴 때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내 머릿속이 아주 복잡했다. 이어폰이라도 가져올 걸.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랐다. 고개를 들어 그 남자를 보았다. 내 시선이 고울 리가 없었다. 남자도 내 시선이 심상치 않다는 걸 분명히 아는 듯했다. 그러나 그 남자는 저 여자가 왜 저러나? 하는 표정이었다. 조금 어리둥절하다고 할까, 그런 모습이었다. 별 거지 같은 새끼, 지가 무슨 잘못을 하는지도 모르네. 온갖 욕을 안으로 삭이면서 다시 책을 읽는 척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로부터 사흘 뒤 나는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며 앉아 있었다. 내 뒤 편 어딘가에서 젊은 여자가 앙칼지게 외쳤다. 아, 정말, 아빠 소리 좀 줄이라고 몇 번을 말해. 그 때만 해도 그 사람들이 우리 패키지 여행의 동반자일 줄 생각도 못했다. 다음 날 우리는 온통 한국인 여행객으로 가득한 루앙 프라방 행 열차에 앉아 있었다. 남편이 누가 음악을 크게 틀었다고 했다. 청력이 좋지 못한 나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남편은 이미자 풍의 노래가 나온다고 했다. 나는 세차장에서 있던 일을 들려주며 분개하였다. 정말 무례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화난 탓에 내 목소리가 조금 컸을 것이다. 열차에서 내릴 준비를 하다가 우리는 그 소리의 진원지를 알 수 있었다. 그 남자는 우리 바로 앞 좌석에서 골 전도 이어폰을 머리에 두르고 있었다. 소리의 진동이 뼈를 통해 전달되어 내이로 전달된다는 이어폰. 보통 옆 자리의 사람이 개미만 한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얼마나 볼륨을 높였는지 그의 음악은 기차가 달리는 소음을 뚫고도 남편의 귀에 와 꽂힌 것이다. 마지막 날 버스 안에서 모두가 곤히 자고 있을 때였다. 나는 차창 밖을 바라보며 깨어 있었다. 그때 음악 소리가 울려 나왔다. 누군가의 잠을 깨우고도 남을 분명한 소리였다. 나는 소리를 좇아 고개를 돌렸다. 내 바로 뒤에 앉은 그 남자가 내 째려보는 시선을 받았다. 나는 할 말을 고르기 위해 잠시 기다렸다. 다행히 서로 구겨지는 일이 생기기 전에 그 남자가 얼른 소리를 지웠다.
이 세가지 에피소드는 불과 한 달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우리 나라 중년의 남자들은 이토록 둔감하다. 자기들이 내는 소음을 받을 사람은 그들 자신 밖에 없다는 걸 정말 모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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