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니<부부상담사>

어느덧 우리 부모님은 구순에 가까워졌다. 부모님이 팔십오 세를 넘기자 우리 남매들은 이제 몇 번이나 더 생신상을 차려 드리게 될까?, 손가락을 꼽기 시작했다. 다섯 번? 운이 좋으면 열 번? 아무것도 확실할 순 없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그 이별이 당장 내일 찾아올 수도 있다는 점만이 분명할 뿐. 마음이 각별해진 우리는 두 분의 생신만이라도 특별하게 보내기로 했다. 그날에는 두 분이 겪어보지 못한 즐거운 체험을 선물하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년 말 아버지 생신에는 감사패를 만들어 두 분께 드렸다. 3만 원짜리 아크릴로 만든 감사패 위쪽에는 두 분의 사진이 곱게 박혀 있었다. 거기에 이렇게 새겨 넣었다.              
                                     
최고 아버지상.
귀하는 일남 육녀를 낳아 어깨가 무거운 가운데에도 어느 자녀 하나 포기하지 않고 우리를 잘 돌봐주셨습니다. 어릴 적 즐거운 기억을 떠올리면 그 곁에는 항상 귀하가 계셨습니다. 재주가 좋아 망가진 우산을 고쳐주고 책상을 만들어주는가 하면 다니던 공장으로 데려가 목욕을 시켜주었습니다. 여름 바다에 데리고 가주었던 것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넉넉하지 않아도 결코 부족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귀하의 사랑은 평생 간직할 이런 추억으로 우리에게 잘 전달되었습니다. 귀하는 자식들에게 든든한 버팀기둥이었습니다. 남들은 부모를 돕느라 허덕이는데 우리는 도리어 부모에게 부양을 받았습니다. 특히 자식들이 한창 힘겨운 시기에 때맞춰 도와주신 점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 덕에 자식들도 힘차게 발을 디뎌 삶의 한 계단을 뛰어오를 수 있었습니다. 귀하의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어머니와 서로 의지하며 사시는 지금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 점에 뜨거운 감사를 전합니다. 지금의 두 분은 서로 도우며 삶의 그 어느 때보다 강해진 듯 보입니다. 귀하는 우리에게 세상 하나밖에 없는 최고의 아버지이십니다. 하여 존경과 사랑을 담아 이 상을 드립니다.

최고 어머니상.
위 사람은 온 힘을 다해 가난을 딛고 일어나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의 살림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특히 귀하가 보여준 절약 정신은 자식들의 삶에 훌륭한 본보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귀하는 일남 육녀를 낳아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키워냈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가 부모님 곁을 지키며 조금이라도 받은 사랑을 갚으려 노력하는 아들과 딸이 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우여곡절이 많았음에도 많은 것을 인내하며 가정의 울타리를 지켜낸 것에도 크게 감사드립니다. 어머니가 버팀목이 되어 주셔서 아버지와 저희가 편안히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이 많은 역할을 하시느라 어머니의 사랑은 우리에게 조금은 투박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사랑이라는 것을 이제는 잘 알게 되었고 그저 어머니가 주신 사랑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귀하는 우리에게 세상 하나밖에 없는 최고의 어머니이십니다. 하여 존경과 사랑을 담아 이 상을 드립니다.
감사패를 받는 두 분은 무척 진지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패에 새긴 글귀를 읽는 동안, 마치 전교생이 모인 운동장 연단에서 상을 받는 학생처럼 다소곳했다. 머리를 약간 수그리고 귀를 기울이는 그 모습에 코끝이 찡해왔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가 하는 이 모든 일은 부모님을 위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그보다는 부모님 없이 뒤에 남겨질 우리 남매들을 위한 일일지도, 그럴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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