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이는 안도현의 시 <연탄재>의 全文이다.



짧지만 가슴에 와 닿는 시사하는 바는 참으로 심장하며 여운 또한 길게 찡하니 울린다.



어느 하루를 종일 집안에서 지내면서 눈여기노라면 이 시와 주부를 연관시켜 생각하게 된다. 가정과 가족을 위해 혼자 뜨겁다가 재가 되는 건 주부이다. 나머지 가족들은 거의가 빈둥거리는 방관자이거나 대접받기 좋아하는 멤버이거나 용돈이라도 우려내려는 구실찾기 메이커이거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내심 쑥스럽고 부끄럽다.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반문이 정통으로 폐부를 찌른다. 찢기듯 아프지 않다면 사람이 아니다.



이 시의 구체적인 사례를 다음 시에서 선명하게 본다. 흡사 천사 같은 ‘순수’가 물씬 향기롭다.



햇살이 넘실대는

다용도실에 구부려 앉아

먼 길 달려온 수돗물의 푸념을 듣는다



고뇌로 얼룩진

남편의 셔츠 깃 언저리

사춘기의 열병으로

들끓는 아이들의 교복

달래듯 어루만지며

한줌한줌 헹구어 내는

빨래하는 여자



억세게 비벼빠는 내 손길로

잠자는 나를 불러보는 자리

소담스런 빨래를 건져내고

나를 헹구어서



말갛게 다가서면

후광처럼 빛나는

빨래하는 여자 (한필애의 시 <빨래하는 여자> 全文)



무슨 사족을 달아 긴 설명을 할 필요가 있으랴. 시는 그냥 영혼으로 몸 전체로 느끼면 되는 것이다. 못 느낀다면 그게 문제이다.



빨래로 설거지로 물 젖은 손에 계절도 없는 주부 습진에조차 나름대로 의미 부여를 하며 삶을 지탱하는 주부들은 빨래를 노동으로 여기지 않고 ‘나를 헹구는’ 작업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계산하는 마음은 자아실현을 할 수 없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계산하는 마음없이 화려하고 찬란한 삶의 전면에 나서기보다 늘 가족들의 ‘후광’으로 서있고 그러한 후광의 삶을 행복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주부들이야말로 ‘자아실현’의 자격을 갖추었다 하겠다. 전적으로 인정해야만 한다.



바야흐로 여름방학이다. 거기다가 직장인들은 주5일근무제로 매주 이틀은 쉰다. 그러나 주부들에겐 휴가는 고사하고 해방감에 들뜬 가족들의 치다꺼리 때문에 할 일이 배증되고 있다. 불공평하다.



아무리 ‘후광의 삶’에 안주한다지만 이는 주부들에게 가혹하다 생각되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여름휴가만큼은 주부를 모시는 잔치로 확 바꿔보자는 것이다. 정치개혁보다 가정개혁이 우선이어야 하잖겠는가.



대철학자 칸트는 『사람의 감각은 거짓말을 않는데 사람의 판단은 곧잘 거짓말을 한다』라고 갈파했다.



우리들도 주부들에게 지운 짐의 과중함을 감각했으면 판단도 그에 따라야 하며 판단에 따라 마땅히 정직하게 문제풀이를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정직 앞엔 어떤 서열도 권위도 나서지 못할 것이다.





<이기진 논설위원 webmaster@an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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