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엔 엄마 올까?

추석을 보름 앞둔 어느 조간신문의 머리기사 제목은 이런 것이었다. 기사 한쪽에는 반 지하 셋집 좁은 마당에서 쓸쓸히 대문을 바라보고 있는 남매의사진이 실려 있다.

추석은 다가 왔지만 엄마는 오지 않은지 오래고 병든 할머니와 무인도처럼 살고 있는 그들에게 추석은 없어졌으면 좋을 슬픔의 날이다.

갈 곳도 올 사람도 없는 이들이 어디 그들뿐일까. 갈 곳이 있고 올 사람이 있는 이들은 다 행복할까.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여 자살을 택하고 마는 국민이 하루 평균 33명이고 그 중 60대 노인의 자살률은 62%나 증가했다고 한다. 버젓이 직장을 가진 이들 중에도 26%는 자살 충동을 느끼며 사는 ‘자살 예비군’이라 한다.

이런 중에는 한가위니, 만산홍엽이니 하는 말조차도 내놓고 하기가 꺼려진다. 도대체 국민을 잘살게 하겠다는 정치의 현주소는 어디로 실종된 것이며 중구난방 그렇게도 외쳐대는 웰빙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래도 가을은 가을이고 추석은 추석이다. 바다이야기로 나라전체가 도박장이 되었어도, 수 천만 원짜리 드레스와 가짜명품에 희희낙락하는 속물들의 꼴불견이 계속되어도 산은 저렇게 아름다운 빛깔의 단풍으로 가난한 이들의 마음에 물들고, 달은 저렇게 후덕한 어머니 얼굴로 외로운 이들의 밤을 밝히지 않는가.

어차피 그 누구도 나의 행복을 만들어 주지 못할 바에는 한기(寒氣)를 느끼면 몸이 움츠러드는 원리로 사는 거다. 왜 겨울이냐고 악을 쓰지 않고 슬그머니 땅속으로 들어 가 동면을 시작하는 개구리처럼 참 안식과 행복의 지혜를 스스로 터득해야 하겠다.

무엇이 참 안식과 행복일까. 하루는 알렉산더 대왕이 자혜를 구하러 디오게네스를 찾아 왔다.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알렉산더는 그리스를 정복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그리스를 정복하고 무엇을 하겠느냐고 물었다. 알렉산더는 아시아를 정복하겠다고 했다. 그 다음엔 무엇을 하겠느냐고 물었다. 세계를 정복하겠다고 했다.

“세계를 정복하고 그 다음엔 무엇을 하겠소?”
이어진 디오게네스의 질문에 알렉산더는 대답했다

“휴식을 취하며 즐길 작정이오…
그때 디오게네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세계를 정복하지 말고 지금 바로 휴식을 취하고 즐기도록 하시오. 지금 즐기면 아무 고통을 받지 아니하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지 않소.”

사람들은 오늘도 알렉산더처럼 더 많은 것을 정복하고 차지하는 것이 행복인줄 알고 안식하지 못하고 산다. 저 산의 단풍이 저 하늘의 보름달이 행복일 수 있는 지혜로 올 추석엔 집나간 엄마들이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외로워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씩씩했으면 좋겠다. 어서 죽고 싶은 노인들에게 더 살고 싶은 소망이 둥근달처럼 떴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동네 이곳저곳을 다니며 폐지를 모으는 할머니도 엄마 아빠 사진에 얼굴을 비벼대며 울던 아이들도 모두 다 추석, 저 아름다운 가을을 바라보고 아름답다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야속하리만큼 단풍은 정확하게 가을과 함께 물들고, 오곡은 정확하게 추수할 낟알로 여문다. 그렇지. 신은 언제나 우리에게 가을을 주셨고 단풍을 주셨고 알곡을 주셨지. 그리고 올해도 주시지.

다만 우리 인간이 그것을 모르고, 알아도 그 은혜를 감사치 않았을 뿐이지.

이 땅의 외로운 이들이여, 추석이 더욱 외로워 슬픈 이들이여, 서러워 말자.

울지도 말자. 우리의 위로와 기쁨이 눈에 보이는 사람에게서만 오는 것은 아닐진대 이 가을 추석에 임할 은밀한 사랑을 만나보자.

자세히 보면 그것은 장독대를 맴도는 가을 잠자리 날개에서 빛날 수도 있고 낙엽 지는 감나무의 주홍빛 단감에서 익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 사랑을 알면, 그리고 그 사랑에 감사하면 어느 샌가 우리 속에 채워져 있는 것이 평강임을 보게 될 것이다.

이 땅 추석이 외로운 이들의 외로움과, 시월이 슬픈 이들의 슬픔을 모두 가져다 담고 단풍은 더욱 붉게 물들고 달을 더욱 둥글게 떠올랐으면 좋겠다.

/최세균 논설위원

최세균 논설위원  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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