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니를 찾아서>는 주연으로 이주민노동자가 등장하고, 촬영 대부분이 ‘국경 없는 마을’로 불리는 안산 원곡동에서 이루어졌다. 여기까지 보면 이 영화를 이주노동자 인권에 대한 교과서적인 내용일거라고 쉽게 예측해 버리기 쉬운데, 사실 <로니를 찾아서>는 자기 세계에 갇혀있던 한 남자의 성장기를 통해 작은 생각을 조심스럽게 꺼내 보이는 영화다.

영화의 첫 장면, 인호(유준상)는 손에 쪽지 하나를 들고 낯선 동남아 도시에서 누군가를 찾아다니고 있다. 제목이 암시하듯 관객들은 주인공이 당연히 ‘로니’라는 사람을 찾고 있을 거라 추측할 것이고, 분명 이후의 장면에서 그가 거기까지 가서 로니를 찾게 된 이유를 알게 되리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로니’는 맥거핀이다. 아무 이유도 없이 로니를 찾겠다고 애쓰는 인호의 헛발길질 끝에 우리는 예상치 못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인호는 융통성 없이 목표 중심적이며 자존심이 매우 센 인물이다. 도장에서 연 시범대회에서 이주노동자 로니에게 한방을 맞고 쓰러진 이후, 자존심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 인호는 다른 일 다 제쳐두고 그를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그러다 로니와 같이 다니던 친구 뚜힌(로빈 쉬엑)을 찾게 되고, 그와 의도치 않게 계속 얽히는 과정에서 서서히 인호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난다.

이 영화에서 이주노동자 뚜힌의 캐릭터는 마치 비루한 삶의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한다. 뚜힌이 인호와 부딪히는 장면들이 시작되면서 이야기는 활력을 찾기 시작한다. 영화초반, 플롯에 상황을 억지로 끼워 맞추기 위해 만든 상투적인 씬들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로니를 찾아서>가 매력적인 이유는 여기에 기인한다. 뚜힌은 주책없어 보일 정도로 실없이 사람을 좋아하고, 변죽이 좋은 인물이다. 그러면서도 어떤 장소에 가든 당당하다. 아무리 쫓겨나고, 맞고, 무시당해도 웬만해선 비굴해 보이지 않는다. 감독은 뚜힌의 캐릭터를 단순히 수동적이며 연민이 가는 인물로 만들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표현하며, 어떤 사람에게든 열려있는 사람으로 그렸다. 그는 종이위의 국적을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의 국적을 따라 사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성별, 국가, 나이에 상관없이 뚜힌은 누구하고나 편견 없이 친구가 되고, 충돌이 생겼을 땐 삼겹살에 소주,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문제를 해결한다. 끝없이 적을 만들어서 자기 영역을 넓히려는 한국의 수컷들과 달리, 그는 적과 동지의 구분자체를 무력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자존심 하나 때문에 쓸데없이 로니를 찾아다니던 인호는 뚜힌과 있으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전혀 낯선 것들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목표 외에 다른 것을 둘러볼 줄 모르고, 툭하면 손부터 올라가는 인호에게 뚜힌은 싸우는 대신 사과하는 법을, 음악을 듣고 춤을 추면서 삶을 그 자체로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종반부 길에서 우연히 만난 아이가 인호에게 태권도 권법하나를 물어오자 거기서 직접 시범을 보이며 가르치는 장면은 그의 작은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신이 세운 목표가 어긋나면 세상이 다 끝나는 줄 알았던 인호는 이제 결과가 아닌 과정아래 서 있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복수를 위해 시작된 인호의 로니를 찾는 여정은 전혀 뜻밖의 장소로 그를 데려간다. 적에 대한 분노는 어느새 미안함으로 바뀌어있고, 자기논리보다 한 인간에 대한 연민에 마음이 움직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인호는 방글라데시로 날아가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길을 헤매며 누군가를 찾아다닌다. 자기 공간을 지키는 주인의 자리에서 인호는 그제야 이방인의 자리에 서있게 된다. 마지막 장면, 드디어 인호가 어느 집에 도착해 문을 열었을 때, 관객들은 집안에 있던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문안에 있는 사람의 시점으로 인호의 얼굴을 보게 된다. 그것이 이 영화가 보여주는 윤리의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호는 영화 내내 누군가를 판단하고 바라보는 위치에 있다가 마지막에야 비로소 다른 사람의 눈으로 관찰당하는 자리에 선다. 물론 얼굴 가득 지은 인호의 미소를 보고 대강 그 사람이 누군지 짐작할 수는 있지만, 문안에 있던 사람의 얼굴을 영화는 끝내 보여주지 않는다.

영상을 통해 사회에서 소외받고 있는 사람들을 묘사할 때 대부분의 실수는 그들을 단지 고통 받고 억압당하는 수동적인 사람으로 단순히 불쌍하게 그리는데 있다. 이때 이미 타자를 향한 또 다른 편견의 선이 그어지고 있다는 것을 피해가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보는 자의 자리에서 객체를 묘사할 때의 곤란함을 그대로 지고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결국 그건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성찰을 전제로 했을 때 유의미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로니를 찾아서>가 섣부르게 당위를 말하지 않고, 다른 관점으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여지를 열어 둔 점이 난 좋았다. 어쩌면 뭔가를 바꾸자고 말하는 것보다, 굳어 딱딱해진 자리를 털고 딱 한발만 나오자고 말하는 게 정말 어려울 수 있다. 목표가 삶의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삶이 목표를 위해 존재하는 이 본말이 전도된 기형적인 구조에서 인간은 같은 인간도 얼마든지 수단으로 여기게 된다.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목표를 향해 일직선으로만 달려가는 구조에서 다른 것들을 끼어들 틈이 없는 것이다. 점과 점 사이를 강박적으로 달리는 세팅을 벗어나, 그 선 사이에 서 있는 것. 그것이 시작일 수 있을 것이다. 길 위에서 아무할 일 없이 놀 수 있는 순간, 비로소 친구를 만나게 된다.

송보림 영화평론가  freehel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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