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원 논설위원 동화작가 (안산덕성초등학교 교장)

단원고등학교 앞 가로수마다 봄빛이 한창이다. 학교 진입로 화단에는 연산홍, 철쭉, 흰싸리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봄빛으로 물들어있는 가로수에서, 학교 화단의 꽃들에서 먼 바다의 애끓는 목소리가 번져 나오고 있다.

“우린 아직 피지도 못한 꽃인데, 우린 꿈과 미래로 가득 찬 꽃봉오리인데….”

“용서해다오, 용서해다오, 다 못난 어른들 책임이다. 기적만을 바라고 있는 이 어른들을 용서해다오.”

단원고등학교 앞을 지나기가 부끄럽기 그지없다. 죄인이 된 듯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아니, 우리 모두가 죄인이다. 꽃봉오리를 한순간에 꺾어버린 큰 죄인이다.

지난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는 소식에 경악을 했다. 우리 안산의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탄 여객선이란 사실에 또 한 번 경악을 했다. 여객선을 책임져야 할 선장은 제일 먼저 탈출하고, 사고를 대비해 구비된 안전장치는 하나도 작동되지 않았다는 소식에 또 경악을 금치 못했다. 4월 16일부터 지금까지 시시각각으로 들어오는 현장 소식을 보면 매뉴얼도, 실행력도 믿음을 주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위기 대응 현주소에 가슴이 먹먹할 뿐이다.

정부는 우리의 삶터인 안산시와 전남 진도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이에 따라 재난 구호와 복구, 보상에 필요한 행정·재정·금융·세재와 보상 등을 특별 지원받을 수 있다. 그러나 버스 지나간 뒤 손 흔들면 무엇하며, 소 잃은 뒤 외양간 고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전국에서 봉사의 손길이 우리 안산으로 진도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기적을 바라는 촛불 모임도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번져 나아가고 있다. 이 와중에서도 세월호 사망자 명단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 한 것으로 알려진 고위공무원의 직위가 박탈됐다. 한 방송 매체에서 거짓 인터뷰로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람도 구속되었다. 그러나 세월호 관련 악성 댓글은 아직도 근절되지 않고 인터넷상을 떠돌고 있다. 구조작업에 혼선을 주고, 가족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만드는 악플러들은 정부에서 끝까지 추적해서 법 보다 더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재 대형사고로 온 국민이 우울증에 빠졌다. 1993년 10월 서해페리호가 전북 부안군 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 승객 292명이 숨졌다. 2011년 7월에는 강원도 춘천의 한 펜션을 덮친 산사태로 학생 등 13명이 사망했다.

작년 7월, 태안 해병대 캠프에 참여한 고등학교 학생 5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지난 2월에는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로 10명의 대학생이 숨졌다. 두 달 만에 또 다시 대형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모든 것이 다 인재여서 더욱 분통이 터진다.

똑같은 유형의 사고를 계속 당하면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외신들은 세월호 침몰에 대해 개발도상국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사고라고 꼬집기까지 했을까.

영화로도 유명한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의 경우, 참사의 현장은 지옥이었지만 선장과 승무원의 살신성인으로 수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선장과 승무원은 타이타닉호와 함께 운명을 함께했다.

세월호가 타이타닉호를 손톱만큼이라도 본받았다면 이런 끔찍한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한창 꿈을 키워야 할 우리 학생들의 꿈을 바다 속으로 한순간에 가라앉게 만들고 말았다. 될 수만 있다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사고 시간 이전으로 되돌리고 싶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해 휴교 중인 단원고등학교가 학교 정상화를 위해 24일부터 수업을 재개한다. 정신적 충격을 받은 학생들의 심리안정과 회복을 위한 프로그램과 교과 교육을 병행해 진행한다고 한다. 학교와 교육청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 단원고등학교가 빠른 시일 안에 정상화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온 국민의 관심과 사랑이 절대 필요하다.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우리 국민들은 이 기회에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너무나 마음이 무겁다. 실종된 학생들을 생각하면 절로 두 손이 모아진다. 자꾸만 고개가 숙여진다.

“하늘이시여, 우리 단원고등학교를 굽어 살피소서. 실종된 학생들을 기적처럼 다시 돌아오게 하여 주시고, 남아있는 학생들은 먼저 간 친구들의 삶까지 더 살게 해주시고, 그들의 꿈과 희망도 함께 이룰 수 있도록 단원고등학교를 굽어 살피소서.”

류근원 논설위원, 동화작가 (안산덕성초등학교 교장)  kwroo54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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