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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 조정래, 해냄출판사
  • 안산신문
  • 승인 2018.10.31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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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백산맥 / 조정래, 해냄출판사

                                   박청환 (중앙도서관 시민서평단)

“아빠, 우리 벌교 가볼까?” 내가 《태백산맥》을 읽는 동안 아들은 어린이용 《만화 태백산맥》을 읽었다. 책을 다 읽었을 때 아들의 눈은 빛났다. 아들은 소설 속 인물들을 실존한 역사적 인물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굳이 허구의 인물들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허구이지만 또한 진실이니까.

"아빠, 빨갱이가 나쁜 사람들이야?" "국군이 좋은 사람들이야?" "경찰은?" "이 사람들 아직 살아있어?" 아홉 살 아들과의 2박3일 전라도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따로 숙소도 정하지 않은 채 무작정 기차에 올랐다. 아들의 가슴 속에 수많은 질문을 안은 채.

벌교역에 내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태백산맥 문학관. 입에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물고 이게 소화다리인가보다, 저게 염상구가 땅벌과 싸웠다는 철교인가보다 하며 소설 속 배경과 눈에 보이는 풍경들을 일치시키는 대화를 나누며 야트막한 언덕길을 오르니, 드디어 우리의 첫 목적지가 보였다.

작가의 필기구와 취재노트, 신문에 작품을 연재하는 동안 겪었던 국가기관의 의심과 탄압, 협박, 그리고 독자들이 열광한 흔적들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산처럼 쌓인 원본 원고와 함께 아들과 며느리가 썼다는 필사본 원고, 독자들이 쓴 또 다른 필사본 원고들을 보며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태백산맥》은 임권택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는데, 아들은 헤드폰을 끼고 영화 속 주인공들의 목소리를 몇 번이고 반복해 들었다. 특히 하대치를 좋아했는데, 아마도 그 우직한 모습에 반했으리라. 영화화 될 때도 경쟁이 치열했던 배역이라고 한다. 문학관을 나와 ‘현부자네 꼬막집’에서 허기를 채우고 소화의 집, 중도방죽 등 작품 속 배경이 되는 곳을 하나하나 찾다보니 어느덧 해가 저물었다.

문학관 근처 모텔에 투숙했다. 아들이 물었다. “아빠는 그때 태어났으면 국군이 되었을 거 같아, 아니면 빨치산이 되었을 거 같아?”, “아빠는 태백산맥에서 누가 제일 좋아?” 나는 내 생각을 말했고 아들도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우리의 문답내용이 중요하진 않다. 중요한 건, 아들의 가슴속에 끊임없이 질문이 샘솟고 그 질문들을 맘껏 던졌다는 것.

질문 자체가 금기시되던 때가 있었다. 바른 국민, 모범시민은 의구심을 가져서는 안 되며, 그 의구심이 질문으로까지 이어져서는 더더욱 안 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과연 이걸 먼 과거형으로 쓰는 게 맞는 걸까?

돌아오는 기차에서 피곤에 지쳐 잠든 아들의 머리를 어깨에 받쳐주며 생각에 잠겼다. 카운터의 높이 때문에 미처 아들을 발견하지 못한 벌교 모텔 주인의 "자고 갈 거예요, 쉬다 갈 거예요?" 하는 퉁명스런 물음에 눈망울만 끔벅이고, 둘째 날 찾아들어간 순천 모텔에선 “어, 어제보다 싸다” 하며 주책없이 말하는 바람에 방에 들어와서 살짝 꿀밤을 맞기도 했던 아들, 그래도 식당에 들어가면 “아빠 술 한 잔 하라”'며 먼저 말해주던 듬직한 아들의 볼을 살짝 꼬집어보았다.

그때 그 아들이 지금은 중학생이 되었다. 나는 내 아들이, 아니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어른들이 그 아이들에게 매번 명쾌한 답을 주어야 하는 건 아니다. 또 그 아이들의 질문에 모두 답해줄 수 있는 어른도 세상엔 없다. 다만,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언제 어디서든 마음껏 질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질문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등을 두드려주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라 생각한다.

써지는 역사와 삶으로서의 역사는 많이 다르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한 권당 400페이지가 넘는 10권 분량의 대하소설이다. 여순반란사건의 종결에서부터 6·25전쟁, 그리고 1953년 휴전협정 직후까지의 우리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이고 험난했던 시절, 역사에 기록되지 못하고 외면당한 민중의 삶을 통해 진정한 삶으로서의 역사를 그려낸 작품이다.

책의 분량이나 스케일 상 그 내용을 간략하게나마 정리한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 그러한 내용요약이 큰 의미도 없다고 생각한다. 작품 속 한 문장, 대사 한 마디가 그 자체로 살아있는 역사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무슨 무슨 필독서’라는 말을 신봉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간을 쪼개 써야하는 바쁜 삶 속에서 실패의 확률을 줄일 수 있는 한 방편은 되더라는 것이 개인적 경험이다. 누군가가 만약 내 인생에서 소중한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 목록이 있느냐는 물음을 건넨다면, 이 작품 《태백산맥》과 박경리 선생의 《토지》는 언제나 최우선 추천서가 될 것이다.

그때 형만 몰래 데리고 갔다고 집에서 대성통곡했다는, 그래서 두고두고 아빠를 우려먹은 둘째가 요즘 《만화 태백산맥》을 읽고 있다. 두 아들 또한 성인이 된 후에는 원본 《태백산맥》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지금 만화에 열중하고 있는 분위기로 봐선 믿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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