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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안소영/보림출판사>
  • 안산신문
  • 승인 2019.02.27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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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만 보는 바보

저자 안소영은 조선후기 실학자 이덕무가 쓴 짧은 자서전 <간서치전>을 읽고 그에게 빠져든다. 집에서 책이나 읽고 스스로 간서치라 하며 자서전을 쓰는 200년 전 20세 청년이 안쓰러워 그의 마음 깊이 들어가 그의 이야기를 써보기로 한다. 역사 속 이덕무는 어려서부터 책벌레로 불릴 만큼 엄청난 독서가였고 시문에 능해 많은 저서를 남겼다. 이덕무가 쓴 자서전에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이 책은 한편의 수필처럼 감성적이다. 책 간간이 보이는 수묵화는 한층 더 이야기를 풍요롭게 한다.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라고 소제목이 붙은 이 책은 말대로 그의 벗들을 빼고 이덕무를 이야기할 수 없다. 일곱 살 아래지만 터놓고 허물없이 지낸 유득공, 같은 서자출신이지만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서글픈 박제가, 친구이자 처남인 백동수, 그리고 양반자제이지만 서자출신인 이들과 스스럼없이 지낸 이서구가 그의 벗들이다. 또한 조선후기 실학자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연암 박지원과 담헌 홍대용은 이덕무가 평생 모신 스승이다.

이덕무의 어머니가 가난한 살림에도 굳이 사대문 안에 터를 잡은 까닭은 아들의 학문을 위해서였다. 어머니의 소신은 옳았다. 이덕무가 평생 함께 할 벗들과 스승을 만났기 때문이다. 사대문 안에서도 끄트머리 백탑 주변에 이덕무의 집이 있다. 백탑은 지금의 탑골공원 안에 있는 원각사지 10층 석탑이다. 그들은 그 탑을 백탑이라 부르며 누가 약속이라 할 것도 없이 그 주변에 모인다. 이덕무의 집으로, 박지원 선생의 집으로 삼삼오오 모여 자신의 생각과 지식을 나눈다. 후대의 사람들이 실학자라고 이름 붙인 그들의 지식은 오로지 백성들의 삶을 위한 것이었다. 그들이 밤새워 벌이는 지식의 향연 자리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덕무에게 백탑은 추억이자 그리움이다. 나중에 이들은 〈백탑청연집〉이라는 시문집도 펴냈다. 후대의 사람들은 이들을 백탑파라고 이름 붙이기도 한다. 이덕무는 오십이 넘어 사경을 헤매면서도 백탑 주변을 서성였다. 많은 이들이 종로 한복판에 있는 이 탑을 수없이 지나쳤을 터인데 누구라도 이덕무만큼 의미를 두었을까? 지금의 백탑은 유리관에 갇혀있어 이덕무가 반했던 달빛에 비친 아름다움까지는 느낄 수 없겠지만 종로를 가게 된다면 살펴보면 좋겠다.

그는 서른 중반 규장각 검서관이라는 관직을 받기 전까지 가난하게 살았다. 식구들의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그렇게도 좋아하던 맹자 책을 팔았을 때는 비참했을 것이다. 그런 비참함을 안고 유득공을 찾아가 나는 오늘 맹자에게 밥을 얻어먹었노라 서글픈 고백을 했을 때 유득공은 말없이 자신도 책을 팔아 그에게 술을 산다. 그리고 우린 오늘 맹자에게 밥을 얻어먹고 좌씨에게 술을 얻어먹었노라 유쾌하게 웃는다. 벗이란 바로 이렇게 섣불리 위로하지도 충고하지도 않으면서 함께 하는 것. 우리에게 이런 벗이 있는가? 또 이런 벗이 되어주었는가? 친구보다는 벗이라는 단어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각박한 현실에서 참으로 위로가 되는 책이다. 조선후기 실학자들의 삶과 서민의 삶이 그리 다르지 않기에 더욱 그렇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서민에게 도움이 되는 학문을 하고자 했다. 어떻게 하면 백성이 잘 사는 나라가 될까 고민하고 토론하는 그들의 모습에 위로를 받는다. 그들은 지금의 세상에서도 역시 비주류 정치인이고 학자들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손을 내밀 것 같다. 얼마나 살기가 힘드냐고 같이 한번 잘해 보자고 말이다.

위인전도 역사책도 아니지만 역사 속의 이덕무라는 한 개인의 이야기를 이렇게 매력적으로 써낸 작가의 역량에 참으로 감탄을 보낸다. 작가는 말한다. 사실로 반듯하게 문살을 짠 다음 상상으로 만든 은은한 창호지를 발라 문을 내보았다고, 그 문으로 옛사람들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드나들었으면 좋겠다고.

                  
                         전인숙 (중앙도서관 시민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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