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란 누군가에게 전염될 수 있는 감정인가. 제주도에서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그리워해 본 적은 있다고 하면 이상한 걸까. 선물로 건네받은 바다색 시집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움이란 어느 시인의 말처럼 ‘조금’ 떨어져 있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다. 중요한 것은 아주 적당한 거리감이다. 전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미지의 영역이라면 동경은 생겨날 수 있지만, 애초부터 그리움은 불가능하다. 반대로 지금 자신이 존재하는 영역이라면 익숙함이 자라나 그리움은 종결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제주도, 성산포는 우리 모두에게 ‘조금’ 떨어져 있는 곳이다. 어찌 보면 성산포에 대한 그리움은 전염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태초에 가지고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3천여 섬 중 천여 곳을 직접 발로 찾아다니며 섬에 관한 시를 많이 써 ‘섬 시인’으로 불리는 이생진은 1929년 서산에서 태어났다. 김현승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1996년 '먼 섬에 가고 싶다'로 윤동주 문학상을, 2002년 '혼자 사는 어머니'로 상화 시인상을, 2001년 '그리운 바다 성산포'로 제주도 명예 도민증을 받았다. 이제 구순이 넘은 나이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주변의 모든 것을 시로 쓰는 현역 시인이다.

시인은 성산포 바다에 유쾌하게 눈과 귀가 찢기면서(38 수평선), 끊어도 이어지는(3 끊을 수 없다) 말들을 담을 그릇을 찾아다녔고, 미처 담기지 못한 말들이 넘쳐 바다를 이루도록 그냥 놔두었다. (24 바다를 담을 그릇) 그 말들이 살지 못한 것들의 넋이 되어(63 넋), 일어서서 평면을 깨뜨릴 듯 다가올 때면(39 패배) 무섭기도 하였으나 차츰 친해져 버렸고(27 귀신같은 인상) 점차 담기지 못해 넘쳐흘렀던 말들도 시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두고 두고 보았음에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고(78 삼백육십오일) 저 세상에서도 바다가 있기를 갈망한다.

  ‘저 세상에 가서도
  바다에 가자
  바다가 없으면
  이 세상 다시 오자’ (37 저 세상)

결국 시인에게 있어서 성산포라는 바다는 가까이 있는 것 같지만 항상 일정한 거리를 만들고, 이제 친해진 것 같지만 아직 더 친해지고 싶은 그런 대상이다. 바로 옆에 있으면서 고독을 느끼게 한다. 그러니 그리워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갈망은 파도 같은 ‘밀당’에서 생겨나는 것이니까. 하지만 시집의 처음이 단짝에 대한 아이의 그것처럼 ‘동화적 그리움’이었다면, 시집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인생의 황혼을 맞이한 노년 부부의 그것처럼 ‘달관적 그리움’으로 변해간다.  이렇게 시가 시인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경험이다.

‘낙원에서 맑고 깨끗한 고독을 마실 때 나는 소리치고 싶었다. 그것을 시로 쓴 것이다.’라고 말하는 시인처럼 낙원에서 고독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시인의 근원적인 그리움에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는 어느 날 문득 이 시집을 들고 성산포를 향해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이 시집이 아니라 자신만의 시를 쓰고 읽게 될지도 모르겠다.

                                                김현숙<중앙도서관 시민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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