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원 동화작가

주위에서 흔히 듣는 말이 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일을 겪었을 때 절로 나오는 말이다.

“휴우, 세상에 이런 일이? 오래 살다보니 별 희한한 일을 다 보네.”

지난 15일, 우리 국민들은 정말 희한한 일을 겪어야 했다. 바로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남북 축구전 때문이다. 1990년 10월 통일축구 이후 29년 만에 이루어지는 경기여서 얼마나 가슴 설레며 기다렸던 경기였는지….

그러나 참으로 희한하고 어이없는 축구 경기를 보아야 했다. 아니, 경기를 아예 보질 못했다. 북한으로 응원단도 못 가고, 중계방송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래도 설마하며 경기 시작 직전까지 중계방송을 기다렸지만 허사였다. 설렘과 기다림은 말짱 도루묵이었다.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열린 제3차 남북정상회담 후, 두 정상의 환하게 웃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한반도 비핵화와 연내 종전 선언, 남북 간 경제협력 등 국민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 회담이었다. 그래서 이번 축구 경기는 더 충격이 컸다. 북한이 이렇게 나올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0:0으로 끝난 경기 결과가 문제가 아니었다. 도무지 경기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던 도깨비 경기였기 때문이었다.

귀국하는 선수들의 이야기를 듣고 경기의 과정을 유추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답답하기만 했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경기장에서 전쟁을 치르고 온 기분이며 심한 욕설까지 들었다고 털어놓기까지 했다.

손흥민 선수의 소감을 들을 땐 울화통이 벌컥 터질 정도였다.

“경기에 집중하기 보다는 안 다쳐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었다. 이런 경기에서 부상 없이 돌아온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우리는 글을 읽을 때 행간에 담긴 의미까지 유추해 읽는다. 시를 읽을 땐 더욱 그렇다. 손흥민 선수의 함축된 소감 뒤에 감추어진 많은 의미를 유추해야만 하는 국민들의 마음은 허탈하기 그지없었다.

축구협회는 아시아축구연맹에 북한 측 징계검토에 관한 공문을 발송했다고 한다. 그러나 후폭풍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축구협회는 경기 주요 영상을 짧게 공개했지만, 전체 경기 영상을 방송하라는 축구팬들의 요구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북한 이미지가 안 좋게 나갈까봐 아니면 정부에 미운 털이 박힐까 KBS가 일부러 방송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 댓글까지 올라오기까지 했다.

통일부 장관은 "북한 측의 무관중 응원은 자기들 나름대로 공정성 조치를 취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라는 말을 해서 빈축을 사기까지 했다. 장관으로서 할 얘기가 아니다.

그 짧은 축구 중계 영상을 보면서 축구가 아닌 탁구를 떠올렸다. 스포츠 교류는 때로는 역사를 바꾸게도 만든다. 그 예가 핑퐁 외교이다.

1960~70년대는 냉전시대였다. 1971년 3월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세계 탁구선수권 대회에 중국 선수단이 참가했다. 문화대혁명 발발 이후 처음으로 중국 선수단이 참가한 것이었다. 대회가 끝난 후, 중국은 미국 선수단을 베이징으로 공식 초청했다. 베이징에서 두 나라의 친선 탁구경기가 열렸다.

정치적 파장은 엄청 컸다. 냉전의 상징이었던 두 나라의 접근을 전 세계에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미국의 헨리 키신저가 베이징을 극비방문, 주은래 총리와 회담을 가졌다.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뚱 주석의 역사적인 회담계획을 공동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닉슨의 역사적인 베이징 방문이 이루어졌고, 세계 역사의 큰 물줄기가 바뀌게 되었다. 미중 수교의 물꼬를 튼 이른바 핑퐁외교의 결과였다.

스포츠 교류를 통해 국가 간의 관계개선을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였다. 남북 분단 현실의 우리에게도 이런 멋진 스포츠교류를 통한 관계개선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때이다.

대통령은 지난 18일 주한외교단을 청와대로 초청해 2032년 남북올림픽을 지지해 달라고 당부했다. 당부만으로 어림도 없는 일이다. 정부 당국의 무대책 남북 축구 여파로 국민들의 마음이 돌아앉은 것도 사실임을 알아야 한다. 이번 축구 사태로 대통령과 정부는 핑퐁외교의 지혜를 성찰, 도약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안산신문  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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