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원 <동화작가>

폐암으로 고생하는 고향 친구에게서 문자가 날아왔다. 장례식에 초대한다는 것이었다. 언뜻 부고 소식으로 착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사전 장례식이었다. 우중충한 색깔의 옷 대신 밝은 옷 입고 오기. 좋은 이야기와 얼굴엔 슬픈 표정 담지 않기 등의 추신이 달려있었다. 
친구의 소원을 곱씹으며 고교시절 교련복 차림으로 함께 트위스트를 추던 추억의 사진 몇 장까지 준비해 집을 나섰다. 시외버스를 타고 가는 길, 친구의 소원대로 하리라 하며 입술을 꾹꾹 깨물었지만 자꾸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친구는 바짝 야윈 얼굴에 화사하게 화장을 했다. 나비넥타이를 메고 휠체어에 앉아 손님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하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 목이 메어 말을 못 잇는 나에게 친구는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돌아서서 그예 눈물을 뚝뚝 떨구고 말았다.
참석한 손님은 30여 명 정도였는데 친한 지인들과 친척들이었다. 친척도 아주 가까운 친척들만 불렀다. 그 옛날 함께 불렀던 포크송을 부르고, 시 낭송도 하고, 아재 개그까지 선보이며 웃음으로 끝냈다. 손님들의 웃음 뒤엔 슬픔을 참는 빛이 역력했다. 그러나 친구는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죽은 후에는 다 부질없는 일이야. 죽기 전 그리운 사람들과 함께 웃고 지내는 시간이 더 값지지 않겠어?”
돌아오는 길 하늘엔 보름달이 걸려있었다. 친구가 보름달로 따라오고 있었다. 아무리 평정심을 찾으려 해도 되질 않았다.
나도 다가온 죽음 앞에서 친구처럼 웃을 수 있을까? 도대체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 걸까? 정말 죽음은 끝이 아니며 삶의 연장이고 삶의 일부일까? 죽음과 사전 장례식이라는 말이 이명처럼 들려오는 길이 되고 말았다.
사전 장례식이란 말을 들은 것은 약 7년 전 텔레비전 뉴스로 기억된다.
캐나다에서 평생 의사로 살아온 이재락 박사의 사전 장례식 뉴스였다. 그땐 낯설게 다가왔지만 지금은 오히려 사전 장례식이란 말에 더 정감이 간다.
2012년, 이 박사는 “죽어서 장례는 아무 의미가 없다. 지인들의 손을 잡고 웃을 수 있을 때, 생의 작별인사를 나누고 싶었다.”라며 사전 장례식을 연 이유를 밝혔다. 그는 사전 장례식 3개월 후, 8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장례식은 그의 유언대로 가족끼리만 조용하게 치렀다고 한다.
1년 전에는 김병국 씨의 사전 장례식이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2018년 8월 중순, 김 씨는 자신이 입원하고 있는 병원에서 사전 장례식을 열었다. 지인들에게 부고장을 보내며 “죽은 다음 장례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임종 전 지인과 함께 이별 인사를 나누고 싶습니다. 검은 옷 대신 밝고 예쁜 옷을 입고 함께 춤추고 노래 부릅시다.”라고 했다. 그는 진짜 장례식 없이 화장해 유골을 뿌렸다고 한다.  
장례 문화가 발달된 나라로 일본을 꼽을 수 있다. 일본에선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활동을 종활(終活)이라고 한다. 자신의 생을 기록하는 엔딩 노트를 쓰기도 하며 생전에 지인들과 사전 장례식을 치루기도 한다. 유언장 쓰기, 장례 절차, 법률 자문 등을 돕는 서비스가 활성화 되어 있다. 유명 인사들이 솔선수범해서 사전 장례식을 치루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2년 전, 말기 암 판정을 받은 일본의 대기업 총수가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자신을 아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며 사전 장례식을 치렀다. 그는 사전 장례식을 치른 지 6개월 만에 8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장례식은 가족끼리만 조용하게 치렀다. 이미 사전 장례식을 했으니 사후 장례식을 공개적으로 하지 말라는 고인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100세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아무런 준비 없이 임종을 맞이하고 있다. 약속 없이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내 삶을 돌아보며 사전 장례식을 치룰 수 있다면 자투리로 남은 삶을 더 아름답게 살게 되지 않을까?
삶을 정리하는 아름다운 이별, 사전 장례식에 이제 우리도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나는 언제쯤 사전 장례식을 갖게 될까?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친구의 사전 장례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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