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오 이시구로>

<나를 보내지 마>는 2005년 복제 인간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에 의문을 제기한 소설이다. 출간 직후 <타임> 선정 ‘100대 영문 소설’ 및 ‘2005년 최고의 소설’로 선정, 전미 도서협회 알렉스 상 (2006), 독일 코리네 상(2006) 등을 받았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5살 때 해양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영국으로 이주하였다. 영국에서 일본계 동양인으로 살며 대학에서 철학과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작가가 되었다. 1982년 첫 소설을 시작으로 인간과 문명에 대한 비판을 담은 작품들을 발표해 왔으며, 2017년에는 “위대한 정서적 힘을 가진 소설을 통해 세계를 연결하는 심연을 발견했다”는 평가와 함께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그저 불편한 과거를 잊고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은 걸까요? 우리가 뒤를 돌아보고 과거를 직면하는 것이 정말로 필요하다면요? 우리는 언제 기억해야 하고, 언제 잊어야 할까요?” 라는 과거의 불편한 기억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그는 모든 형식의 예술 활동들이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선한 사람들의 의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기며, 문학을 통해 우리가 세운 장벽과 벽을 넘어서길 바란다고 하였다.  
  1990년대 후반, 영국에 위치한 헤일셤 기숙학교는 복제 인간(클론)을 교육하고 교양을 쌓게 하면서, 일반인에게 장기 이식을 위해 사육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성장한 캐시와 토미는 진실을 알려 주려한 루시 선생님의 작은 힌트를 통해 세상의 그림자를 찾아가고 클론의 정체성을 무의식적으로 의심하게 된다.

클론들은 과학 기술로 만들어진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의 영혼은 세상으로부터 부정 당한다. 또한 불치병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을 손에 넣은 일반인들은 그 치료(장기교체)를 포기하고 희망 없는 과거로 돌아가길 거부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일반인 학생들과 다를 바 없는 클론들이 우정과 사랑을 나누고 질투와 이별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모습은 한없이 인간적이다.
  끝까지 어떤 답도 주지 않고, 그 무엇 하나 변하지 않고 끝나는 소설 속 이야기는 답답하다. 추악하고 비겁한 일반인, 이해관계에 따라 그들을 버렸던 지지자들, 알려주되 알지 못하게 가르쳤던 선생님들, 무능하고 나약했던 클론들이 세상의 비밀을 알아가는 과정은 전혀 통쾌하지 않다. 작품 속 유일하게 아이들에게 사실을 이야기 하려 했던 루시 선생님의 독백과도 같은 토미와의 대화는 더욱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이봐, 토미, 네가 이해할 수 없는 온갖 일들이 있단다. 하지만 그걸 너한테 말해 줄 수는 없어... 온갖 일에 대해 알려줄 수가 없다고. 하지만 네가 노력하면 언젠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 사람들이 네가 사실을 알아내기 어렵게 만들 테지만 네가 원한다면, 진정으로 원한다면 알아낼 수 있을 거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즉각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기 시작해야 해...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해주렴.”(p156)
  클론들은 낡고 오래된 것들만 겨우 가질 수 있었다. 그들의 부모 혹은 근원자(DNA 공유자)는 매춘부나 부랑자 혹은 범죄자 같은 사회부적응자로 알려져 있으며, 어린 클론의 보호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의지했던 선생님들은 그들을 가엾어 했고 때로는 혐오했다. 모든 교육은 실체가 없이 이루어졌고, 그들을 사회에서 자립할 기술도 지식도 배우지 못했다. 장래는 꿈꿀 수 없는 것이며, 그들은 아무런 대가도 없이 장기 적출 순서만 기다려야 했다. 클론을 세상에 태어나게 한 과학자들은 강화된 특질을 가진 우수한 아이를 생산코자 사건을 일으켰고, 이 사건은 사람들이 줄곧 가지고 있던 클론에게 인간이 대체될 수 있다는 공포를 세상에 환기시켜 버렸다.

이제, 인간들은 클론들이 정부가 운영하는 거대한 ‘사육장’이라는 그림자에 머무르길 바란다. 이 모든 상황을 알게 된 기증자 토미는 분노를 넘어 수치스러움을 느끼며 체념하게 되고, 기증자를 간병하는 캐시는 동료 클론의 삶을 돌보며 기증을 신청한다.
  인간에게도 클론에게도 단 한 번의 삶만 주어졌다. 신은 인간처럼 클론에게도 영혼을 불어넣었으며, 클론이 감정을 느끼는 그 순간은 인간이 감정을 느끼는 순간과 한 치의 어긋남이 없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낸 클론을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여러 잣대를 통해 장벽을 세우며 갈등과 분열을 겪는 지금의 현실과 소설 속 영국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의 어두운 기억과 인류 보편적인 윤리를 외면하면서 쟁취한 안정되고 풍요로워 보이는 사회는 소설 속 ‘사육장’이라는 메타포(은유)인 것 같아서 괜히 더 뜨끔하게 다가온다.
  언제나 사태를 있는 그대로 믿고 싶어 했던 우리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루시 선생님의 경고를 통해 우리의 삶을 되돌아 봐야할 것이다. 작가는 소설 속 토미와 캐시의 결말에 분노하고 슬퍼하는 우리를 만나게 하고 싶어서 그토록 삶에 초연한 캐시를 보낸 듯하다.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이상 시인의 ‘거울’의 한 구절처럼 <나를 보내지 마>는 한없이 두껍고 어두운 거울 속 세상이다. 이제는 내가 거울 속에 있을지 거울 밖에 있을지 생각해봐야 하겠다. 

이순옥 <중앙도서관 시민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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