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태진 <현대.기아차 책임매니저.산업기술보호 전문가>

작년 9월 우리나라의 현대/기아차는 첨단 자율주행차 산업의 주도권 확보를 위해 글로벌 톱3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기업” 앱티브(Aptiv)와 합작 계약을 통해, 총 4.8조원을 공동 투자한 美 보스턴 소재 법인에서 2022년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양산, 2024년 4단계 자율주행 달성, 2030년 5단계(무인차) 완전자율주행의 시대로 도약하기 위한 첫 발판을 마련한데 이어, 12월에는 LG화학이 미국 1위 자동차 회사인 GM과 손잡고 2.7조원을 들여 美 오하이오주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했다. 자동차 기업과 합작한 최대 규모의 배터리 공장으로 2025년이면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능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글로벌 배터리 시장 공략의 전략기지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것은 소위 미래 4대 핵심축이라고 일컫는 I-C-B-M(인터넷, 통신, 빅데이터,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초연결 시대 최첨단 산업의 한 형태이며, 이를 통해 산업별 장벽과 업권이 무너지고 동종 회사가 아닌 이종 분야 간에도 경쟁이 시작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무한경쟁 체제의 포문이 열렸음을 의미한다.
이런 와중에 대한민국 입장에서 한가지 다행인 점은, 기술연구와 융합을 통한 혁신적 미래 산업 환경 조성이라는 비전 하에 비즈니스 단지 내 스마트팩토리 보급, 사이언스밸리 및 스마트시티 조성 등을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안산시와 같은 지방자치단체가 있어, 국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4차 산업혁명의 주력 기업들이 육성되고 기술연구와 청년 창업이 유치되는 등 연구개발 붐 조성을 통해 미래의 신성장 동력을 키울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단 이러한 비전을 달성하는 데에는 양질의 기업 유치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연구개발 환경 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첨단기술의 보호이다. 연구개발로 인해 만들어진 기술은 천문학적인 투자금이 들어간 우리의 중요자산이자 기밀인 만큼 이를 보호하는 데에도 상당한 투자와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군사적으로는 우방끼리 상호 보호해주지만, 경제 스파이는 우방도 적국도 가리지 않기에 경제 전쟁이 더 무섭다고 했던가? 특히 중국은 수년전부터 ‘제조업 굴기 2025 전략’ 프로젝트를 공식화하면서 정보기술, 로봇, 신에너지, 자동차 등 특히 우리나라 핵심산업 분야와 겹치는 10개 분야를 집중 육성하기로 하면서 전세계 국가들을 상대로 해킹·사회공학·산업스파이·전/현직 직원 포섭·인수합병(M&A)를 통한 우회 기술습득까지 다양한 형태로 대담하게 ‘핵심기술 헌팅’을 자행하고 있는 바, 이는 상대국의 단기적 수익의 훼손뿐 아니라, 미래 경쟁력을 심각히 위협하는 전략으로, 최근 미-중 무역전쟁의 핵심 쟁점이 산업스파이 문제였을 정도로 그 파급력은 대단하다. 이에 더불어 전통적인 위험국 러시아와 최근 경제발전의 잠재성을 재평가 받는 인도에서도 수많은 기술 탈취 시도가 발생하고 있으므로 효과적인 기술 보호 체계와 시스템이 절실하다.
필자는 전기/전자 및 자동차 분야에서 지난 십수년간 국책과제라고 불리는 국가 핵심기술 및 산업기술 개발 프로젝트 등에 관여하며 기술과 경영정보 등을 보호하고 소속 기업뿐 아니라 상생 차원에서 부품/설비 협력사의 정보보호 활동을 돕는 역할도 병행해 왔다. 가장 안타까웠던 현실은 인력과 예산이 충분한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어렵게 개발한 기술임에도 보호 예산이 매출의 1%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의 경제적 고충을 두고, 방법을 고민한 끝에 정부기관과 협력하여 프로그램을 만들어 기술 보호 저변 확대에 힘써 왔으며, 그 결과 상당수 업체가 이미 메뉴얼화된 기술 보호 패키지를 효율적으로 도입하여 추가 인력 또는 투자 없이도 기술 보호 수준이 효과적으로 향상되는 값진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실제로 현대/기아차는 이러한 패키지를 도입한 협력업체와 내부 합동 점검 과정에서 해당 업체에서 외부로 불법 유출한 흔적을 확인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결과 신차종을 포함 수십 개 차종의 설계도면 등을 유출한 가담자를 검거 및 성공적으로 자료를 회수한 바 있는데, 만약 해당 도면이 중국기업의 자동차 생산에 사용됐다고 가정한다면 영업상 피해액이 수년간 700억원대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추산이 보도될 정도로 획기적인 고무적인 사례였으며, 이는 범국가적 협력이 국가 기술 보호 수준을 한차원 향상시킨 본보기였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 보호에 관한 상생 정신이 수십년 전 3차 산업 태동기부터 존재했더라면 지금까지 유출된 수백조원대의 기술들이 대한민국 경제 부흥의 더욱 큰 원동력으로 작용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동시에 남는다.
기술유출로 인해 성장가도를 달리던 기업이 파산하는 사례는 다반사다. 앞서 밝혔듯이 대기업과 달리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기술유출을 적발하더라도 이미 경쟁사가 관련 제품을 시장에 내놓으면 위기에 몰리며, 최대 10년 이상 걸리는 송사로 재판에 매달리다 보면 회사는 자본잠식 상태로 외형만 유지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따라서 무엇보다 사전예방 활동이 최우선이다.
그를 위해 강소기업 등 기술 보유 기업에 시급히 적용되어야 할 1단계 기술보호 패키지로는 주요 인력에 대한 비밀취급 서약 및 인가·보안의식 교육·전사 기술보호체계 컨설팅·기술관리 실태점검 및 실무인력 전문성 강화 등이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보호 사례를 들자면, 그리고 특히 대 중국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기업들에 대하여는 중국 정부가 1994년 중국과 외국의 합작회사에서 중국 측 지분이 50% 아래가 될 수 없다고 법규화함으로써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로부터 부득이 기술 및 경영정보를 중국 측 합작법인에 공유할 수 밖에 없도록 하였는데, 이러한 리스크에 대처하기 위해 자료 등급을 체계화 하고, 중국 측에 전달할 자료에 대해서는 Need-to-know 기반의 공식 절차에 따라 정보 제공을 하되 최소화 하며, 외부(주로 중국 공산당 및 국유기업)에 무단으로 유출되더라도 파일 열람을 제한시키는 등 안전할 수 있도록 DRM/DLP 등 솔루션 적용을 통해 중국의 특이한 환경에 맞는 정책과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더욱 상세한 노하우는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 또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 등을 통해 안내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예방조치를 수행하였는데도 만약 어쩔 수 없이 기술 유출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는, 사후적인 조치로서 일벌백계를 통해 경종을 울릴 수 있어야 한다. 일부 뒤늦은 감이 있으나 다행히 산업기술보호법, 영업비밀보호법 등 관련 법령 개정을 통해 그간 허술하다는 비판을 받아 온 제도들을 상당 부분 보완하고 법망을 촘촘히 구성하게 되었다. 특히 당장 2.21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은 국가핵심기술 해외 유출자에 대한 처벌 형량을 3년 “이상”으로 대폭 강화하였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최대 3배까지 도입하는 등 기술유출범죄에 대한 대응력을 크게 높일 것으로 기대하는 바이다. 물론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일찌감치 경제스파이법을 제정한 후 2013년 스파이에 대한 형사처벌을 대폭 강화하여 벌금 상한을 50만 달러에서 500만 달러로 10배 끌어올리고 국가 핵심기술을 해외로 빼돌리면 ‘간첩죄’로 가중처벌할 수 있도록 한 미국에 비하면 향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기존의 정보유출 피해기술은 정밀기계를 비롯해 전기전자ㆍ정보통신ㆍ자동차 등 당대 첨단기술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본격화 될 4차 산업 시대에도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다. 초연결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로봇기계, AI재화, 자율주행 자동차 등 미래 첨단기술이 탈취 대상 기술이 될 것이다. 이러한 산업핵심기술은 국가경제와 직결되며, 유출 여부에 따라 국가 미래가 좌우되므로, 우리나라가 다시 한번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이제는 Fast Follower에서 국제사회를 주도하는 First Mover라는 위대한 국가 반열로 도약하기 위해 기술 보호를 최우선적으로 배려하는 관행이 정착되어야 한다. 지금 시점은 적합한 대응 여부에 따라 앞으로 수십년의 미래 먹거리를 쟁취하느냐 놓치느냐 하는 시점이기에 정부 부처와 수사기관, 민간기업 등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공조 및 협조 그리고 상생의 지혜를 발휘하는데 박차를 가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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