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원 <동화작가>

내게는 은사님이 많이 계신다. 학교와 문단(文壇)에 잊지 못하는 은사님들 때문이다. 그래서 정초 세배와 스승의 날 무렵엔 거의 빠지지 않고 찾아뵙곤 했다. 그 은사님들이 아니었으면 ‘오늘의 내가 과연 존재했을까?’라는 고마움으로 아직도 송구스러운 생각이 든다.
올해는 예전 같지가 않다. 작년까지만 해도 찾아뵌 은사님들이 세상을 떠나 이제는 학교 은사님은 한 분도 안 계신다. 나를 동화작가로 등단시켜주신 문단 은사님은 생존해 계시지만 그마저도 연로하셔서 걱정이 된다. 은사님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하게 생각이 드는 문단 선배들도 있다.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좋은 서평으로 힘을 불어넣어 주시던 선배 분들, 10년 넘게 연하장만 보내며 ‘올해엔 꼭 찾아뵈야지’ 차일파일 미루다 이 분들도 돌아가셔서 한 번도 상면을 못했다. 죄인이 된 기분이다.
문단만 아니라 화단(畵壇)에도 계셨다. 1986년, 그 당시 최고의 어린이 잡지였던 ‘새벗’에 장편동화 ‘천등산 이야기’가 새벗문학상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다. 1년 동안 연재되는 장편동화에 그 화백님이 삽화를 그리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인연이 맺어지는 듯 했으나 오래 가지 못했다. 세월이 많이 흐른 후, 우연히 인터넷상에서 화백님의 대담을 읽게 되었다. ‘우리 시대의 장인 일러스트레이터 전성보’ 눈에 확 들어왔다. 편집자와의 대담 중에 신문에 연재되는 성인소설에 삽화를 많이 그렸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내 장편동화에 삽화를 그릴 때가 가장 인상에 남았다는 글도 있었다. ‘감동과 박진감이 넘치는 내용에 가끔은 주먹을 불끈 쥐고, 또 가끔은 눈시울을 적시기도 할 만큼 감동 있게 읽은 동화’라고 했다. 헤어져 있는 동안 화백님의 살아온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다가 끝부분에서는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다. ‘2010년 10월 12일 타계’란 글이 가슴을 쿵 때렸다. 그 인터넷 글을 읽은 것이 2016년이었다. 세상을 잘못 살아온 자화상에 스승의 날이 되면 절로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진다.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교권 존중과 스승 공경의 풍토를 조성, 교원의 사기 진작과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하여 지정된 날인데 그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면 꽤나 흥미롭다.
1963년 충남 강경여고 청소년적십자 단원들이 ‘은사의 날’을 정하고 사은행사를 개최한 것이 시초로 알려져 있다. 이듬해 청소년적십자 중앙학생협의회가 5월 26일을 ‘스승의 날’로 지정했지만, 1965년부터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로 변경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 때에는 1973년부터 1981년까지 금지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1982년에 다시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어 시행되어 오고 있다.
세월이 가면서 스승의 날도 퇴색되어가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스승은 지식만을 가르치는 선생이란 뜻만이 아니라 삶의 지혜까지도 가르치는 진정한 선생을 가리키는 말이다.
고려시대 ‘선생’이란 말은 과거에 급제한 사람에 대한 존칭으로 사용되었다. 조선시대 이율곡의 학교모범(學校模範)에는 ‘스승을 쳐다볼 때 목 위에서 봐서 안 되며, 선생 앞에서는 개를 꾸짖어서도 안 되고, 웃는 일이 있더라도 이빨을 드러내서는 안 되며….’로 되어 있다. 이런 예절은 성균관 학칙(學則)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옛날이야기이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간 고리타분하고 시절을 모른다며 욕바가지로 먹기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교육의 중요성엔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그만큼 교육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정권이 바뀌면 정권의 입맛에 맞게 교과서까지도 내용이 바뀐다는 데에 있다. 교육감들을 뽑는 직접선거에도 문제점이 많다. 당만 보고 뽑는 무조건 식의 교육감 선거로는 교육의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감 선거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교육감 선거만은 교육과 관계되는 사람들에게만 일정한 선거권을 주어 그들에게 맡겨야 한다. 교육부장관도 교육계에서 존경받는 인물, 어느 성향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성향의 인물을 임명해야 한다. 그래야 교육이 살며 학생들이 반듯하게 자라고 이 나라의 미래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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