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원<동화작가>

‘흙길 그만 걷고 꽃길만 걷자’
책 제목도 아니고 드라마 제목도 아니다. 그렇다고 영화 제목은 더더욱 아니다. 한 소녀의 피우지 못한 꿈, 바로 트라이애슬론 선수였던 고 최숙현의 앳된 꿈이었다. 트라이애슬론은 보통 수영(3.9㎞), 사이클(180.2㎞), 마라톤(42.195㎞)의 세 종목을 쉬지 않고 연이어 겨루는 경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철인3종경기’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이름 그대로 철인이 되어야 한다. 여느 경기보다 강한 체력을 요구하며, 자신과의 싸움을 피 말리게 해야 하는 힘들고 고된 종목이다. 
고 최숙현 선수는 우리나라의 트라이애슬론을 걸머지고 세계로 나아갈 23살의 꿈 많던 소녀였다.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의 일원이었던 그가 감독과 선배 그리고 운동처방사의 가혹행위에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23살의 짧은 생애였다. 그가 남긴 휴대전화의 마지막 메시지는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였다. 이 짧은 메시지 안에 담겨진 최 선수의 고통과 절망,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연민의 아픔으로 숨을 제대로 못 쉴 정도이다. 혼자의 힘으로 대한체육회스포츠인권센터, 대한트라이애슬론 연맹, 경주시청, 경주경찰서 등, 무려 6개 기관에 자신의 피해 사실을 호소했으나 그를 보호해준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소중한 생명이 죽어야만 움직이는 게 대한민국의 현주소인가 묻고 싶을 정도이다.
최 선수를 자살로 몰고 간 3인이 국회에 섰다. 그 뻔뻔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녹취록에는 욕설은 물론 폭행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충격적인 음성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감독은 관리·감독의 소홀한 부분만 잘못을 인정하고, 상습적인 폭행과 폭언 의혹에 대해서는 오리발을 내밀었다. 함께 참석한 남자 선수도 마찬가지였다. “폭행한 사실이 없으니 미안한 것도 없다.”라는 답변으로 공분을 샀다. 선수들이 가장 무서워했던 선배 주장도 마찬가지였다. 하는 행태가 꼭 못된 정치인들을 빼박았다.
최 선수와 경주시청에서 함께 뛰었던 동료들이 용기를 내 가해자들의 충격적인 폭행 내용을 폭로했다. 선수 생활이 아니라 차라리 지옥이었다. 짐승만도 못 한 인간들이란 말이 증언이 끝나고도 사라지지 않을 정도였다. 결국 감독과 주장은 영구제명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영구제명? 절대 안 된다. 법을 조속히 바꿔서라도 반드시 이들에게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 그리고 절대 용서할 수 없는 또 한 인간, 운동처방사도 있다. 이는 경찰에 체포되어 현재 조사 중이라고 한다. 
사라질 듯 사라질 듯 그러면서도 사라지지 않는 게 스포츠계의 폭력이다. 빙상계, 유도계를 비롯해서 아직도 음지에서 폭력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의 코치로부터 받은 성폭력 사건이 불거졌을 때는 국민 모두가 기대를 했었다. 체육계에 전반적인 개혁이 예고되었지만, 역시나 흐지부지, 도로아미타불, 말짱 도루묵이었다. 왜 우리나라는 모든 것이 용두사미 꼴이 되는가? 답답하기 그지없다.
현재 최 선수 사망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조사하고 있다. 정부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스포츠계 폭력의 뿌리를 뽑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번만큼은 어영부영 그냥 넘어가서는 절대 안 된다. 체육계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수술이 이루어져야 한다. 최 선수의 억울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폭력의 전말이 낱낱이 밝혀지고, 가해자들은 혹독한 죗값을 받게 해야 한다. 물렁한 법이 되지 않도록, 이현령비현령 법이 되지 않도록 법 조항에도 메스를 가해야 할 것이다.
최 선수가 숨지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휴대전화 메시지.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 이번만큼은 국민적 공분이 양은냄비처럼 쉽게 끓었다가 이내 식어버려서는 안 된다. 방관자적 자세로 보아서도 안 된다.
10 여 년 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전설의 고향’이 새삼 떠오른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은 반드시 귀신으로 환생하여 가해자에게 복수를 하는 내용의 전설의 고향. 세월이 오래 흘러 기억 너머로 사라져버린 줄 알았는데 요즈음 다시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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