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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시끄러운 고독
  • 안산신문
  • 승인 2020.08.19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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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후밀 흐라발>

작가의 천재성, 광기, 머리를 논한다면, 보후밀 흐라발의 장편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작가의 광기어린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1960년대 체코의 암울한 배경을 차분하게 그려나간다. 이름도 생소한 작가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제목이 더 와 닿아 그 세계가 궁금해졌다. 요즘 발을 딛고 있는 이 세계도 시끄럽다. 빨간불이 들어오면 후진하고 파란불이 들어오면 전진하는 세계. 세상이 압축판처럼 움직인다.
   느린 듯 가독성이 있는 이 책은 132쪽 분량으로 얇지만 묵직하다. 모두 여덟 장으로 나뉘었으나 35년째 나는 폐지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음을 서두에 번복함으로 끊임없이 이어나간다. 손에서 쉽게 떼어놓을 수 없는 이유다. 그의 문장은 되돌아가 독식하고 싶을 만큼 사로잡는 대목이 많다. 1장 첫 페이지부터 35년째 책과 폐지를 압축하느라 35년간 활자에 찌든 나는 3톤은 압축했을 백과사전과 흡사한 모습이 되어버렸다거나 나는 맑은 샘물이 가득한 항아리여서 조금만 기울여도 생각의 물줄기가 흘러나온다는 표현이 강렬하다. 정년퇴직을 5년쯤 남겨두고 압축 일을 하느라 백과사전과 흡사한 모습이 되어버린 한탸의 모습이 그려졌다.
   보후밀 흐라발은 자신이 쓴 책들 가운데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가장 사랑하는 책이라 고백했다. 그가 세상에 온건 이 책을 쓰기 위해서였다니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녹여낸 작품일 듯 싶다. 체코 출신으로 공산주의 체제의 검열과 감시로 작품이 20여 년간 출판금지 되기도 했다. 마흔아홉 늦깎이 작가가 되기까지 그는 철도원, 보험사 직원, 제철소 잡역부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그러한 삶의 경험은 이 작품에서도 배경이 된다. 감시 체제하의 시끄러운 세계와 지하실에서 압축기로 폐지 압축 일을 하며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고독한 세계의 주인공 한탸. 바깥세상이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져있는 동안 그에겐 책이 보물이고 어두운 지하가 은신처다. 오늘은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이 지하를 훈훈하게 데워준다.
   밀려드는 폐지더미 속에서 빛을 발하는 책이 있다면 문장을 흡수하고 상자에 보관한다. 한번 책에 빠지면 그 세계에 흡수되어 압축되지 않은 종이 더미가 산처럼 쌓일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소장의 따가운 질책도 들어야 한다. 집에는 3톤의 책이 쌓여 있고 그의 고독은 지하 공간에서 활기 넘치는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 스스로를 영원과 무한을 추구하는 돈키호테라 일컬으며. 술을 마시면 예수와 노자, 그리고 셸링과 헤겔도 보인다. 예수가 낭만주의자라면 노자는 고전주의자이며, 예수가 밀물이라면 노자는 썰물, 예수가 봄이면 노자는 겨울이라는 ㅤㅎㅑㄴ타. 그의 문장에 주술처럼 빨려든다.
   35년째 지하실에 살면서 씻기 싫어하는 것도 쥐들을 닮아간다고 한다. 발밑 하수구마다 잔인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쥐들을 보며 쥐들의 하늘 역시 인간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한탸는 압축기를 통해 세상의 옳고 그름을 직시한다. 지하세계의 패권을 다투는 전쟁으로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고 하거나 폐지를 압축하는 자신도 하늘보다 인간적이지 못하다고 한다. 그건 일종의 암살이거나 무고한 생명을 학살하는 행위이므로.
   추운 밤이면 품안에서 공처럼 웅크렸던 어린 집시여자처럼 몸을 사린 생쥐들을 보며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집시 여자와 영원히 사는 것 외에는 바라는 게 없었지만 게슈타포는 그녀를 다른 집시들과 체포해 끌고 갔다. 이때도 한탸는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늘 그 너머에는 분명히 연민과 사랑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한탸가 말하는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란 공포가 인간을 덮칠 때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아닐까. 한탸는 35년 동안 압축기에 종이를 넣어 짓눌렀고 폐지를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어왔다. 그러나 부브니에서 새 기계인 압축기 한 대가 스무 대 분량의 일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은 끝나고 만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문명의 이기로 천국에서 추방당하지 않기 위해 책들과 운명을 함께한다. 압축통 안으로 다리를 넣고 몸을 웅크린 채 녹색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미지의 세계로 진입한다. 이름을 알 수 없었던 일론카, 그녀의 이름이 보이고 한때 사랑이었던 집시여자가 보인다. 정년퇴직을 5년 앞두고 한탸는 막을 내린다.
   잠시나마 불꽃처럼 사랑을 나누었던 집시여자와 한탸마저 사라져 쓸쓸하다. 예상치 못한 비극적 결말이 슬프다. 읽고 나서 고독이 키워드처럼 여운으로 남는다.

홍혜향 (중앙도서관 시민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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