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원<동화작가>

옛날 상소문 형식으로 현 정부의 실정을 비판한 ‘시무7조 상소문’이 아직도 화제이다. 국민청원이 40만 명을 훌쩍 넘었다. 청와대는 9월초에 답할 것이라고 예고했지만 무소식이다. 늘 그렇듯 또 빤한 내로남불 답변일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임금이 정사의 잘잘못을 논하는 글을 관료들에게 올리게 하였다. 과거시험 과목에도 시무책이 포함될 정도로 중요시 여겼다.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시대에는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다 보니 다양한 학풍이 나오게 되었다. 사대부 및 학자들이 자신의 학문과 학풍을 국정에 반영하기 위해 시무책을 진언하는 상소를 자주 올렸다. 후에는 사색당쟁의 격랑 속에 목숨까지 담보로 해야 하는 시무책 상소도 많았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시무책은 고려 성종 시대 최승로의 ‘시무이십팔조(時務二十八條)’를 들 수 있다. 시무이십팔조에는 국방과 사회제도, 외교, 종교 등 나랏일에 관한 의견이 두루 담겨져 있다. 시무책에는 그 시기의 시대적 상황이 담겨 있어 역사를 공부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
상소는 조선시대의 중요한 언론 창구였다. 상소에는 한양에 있는 성균관 유생이 올리는 관소와 지방의 향교와 서원의 유생이 올리는 유소가 있었다. 유생들이 올린 중요한 상소는 승정원을 거쳐 임금에게 전달되었다. 특히 성균관 유생이 올린 상소에는 임금이 직접 답변을 하는 것이 관례였다. 상소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것은 만인소(萬人疏)였다. 상소에 1만여 명이 연대 서명을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만인소가 처음 기록에 등장한 것은 1792년(정조 16년) 영남 유생들이 억울한 죽임을 당한 사도세자를 복권시켜 달라는 상소였다.
각설하고 현재 많은 국민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시무7조 상소문은 현 정부의 정치, 경제, 국방 등 정책 전반에 걸쳐 예리한 필치로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필치가 남다르다. 현실을 꿰차는 눈빛이 날카롭고 읽으면 읽을수록 경탄이 절로 나온다. 속이 시원할 정도이다. 비난이 아닌 적확한 비판이란 점에서 많은 국민들이 공감을 하고 있다. 오래 전, 광고 문안 ‘유쾌 ‧ 상쾌 ‧ 통쾌’가 떠오를 정도이다. 
애초 해당 청원은 지난 8월 12일에 작성되었지만 게시판에는 공개처리가 되어 있지 않았다고 한다. 청원은 27일에서야 공개 처리됐다. 이를 두고 야권에서는 청와대가 청원을 일부러 숨겼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국민청원 공개 절차를 거쳤다고 반박했다.
국민청원 제도는 국민을 위한 제도이다. 그러나 취지와는 달리 명예훼손 성격의 청원이 많아 작년부터 100명 이상의 사전동의를 받은 글만 내부 검토를 거쳐 공개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청원인이 올린 뒤 공개 여부가 결정되기까지 보름이 걸린 이번 청원은 국민청원 게시판에 공개 처리된 지 하루 만에 공식 답변 요건을 채웠다. 상소문 끝부분엔 청원인의 간절한 바람이 압축되어 있다. ‘부디 일신하시어/ 갈등과 분열의 정치를 비로소 끝내주시옵고/ 백성의 일기 안에 상생하시며/ 역사의 기록 안에 영생하시옵소서.//’
상소문의 끝부분은 개인의 바람을 떠나 국민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상소문을 다 읽은 뒤, 따라 붙는 씁쓸함이 가슴을 더 무겁게 짓누른다. 통쾌하고 후련한 마음은 잠깐이다.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제대로 가고 있기는 한 것인가?
대통령의 취임사가 떠오른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그날 대통령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그 힘찬 목소리가 이젠 믿기지 않는다. 코로나에 의료계 파업, 재난지원금 갈등, 추 장관의 아들 병역 비리 등 쌓인 현안이 산더미이다. 지금이라도 청와대는 상소문 5조의 글을 심사숙고해야 한다. 더 이상 어영부영 넘어갈 일이 아니다. 함량미달의 장관들을 교체해야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라. 초심을 잊지 않고 국민만 생각하면 그 모든 어려움은 해결 될 것이다.   

안산신문  ansansm.co.kr

<저작권자 © 안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