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원<동화작가>

11월이 시작되었다. 산과 들마다 타오르던 단풍불이 조락하기 시작하고, 달력의 입동 글자가 마음마저 춥게 만들고 있다. 2020년도 이제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이 때쯤이면 밀레의 만종처럼 수확을 마무리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올해 우리는 삶의 수확을 얼마나 거둬들였는지? 코로나로 인해 인간관계는 어떻게 되었는지? 정치, 경제, 문화, 외교, 교육 등은 예년보다 더 나은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깊이 성찰해야 할 때이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국정감사 때는 윤 총장과 추 장관의 대립으로 시끌시끌하더니 감사가 끝나자마자 내년으로 다가온 서울과 부산, 두 광역단체장에 대한 보궐선거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어린 시절의 운동회 때 계주시합은 막판에 했다. 역전과 역전이 거듭될 때는 함성으로 운동장이 떠날 갈 듯했다. 정치권의 계주는 새해부터 지금까지 국민들의 울화통 터뜨리기 계주를 보는 것 같다. 그것도 오물을 뒤집어쓰고 달리기를 하는 모습이었다.
이제 정치권의 화두는 내년 4월에 있을 보궐선거이다. 보궐선거란 대통령이 궐위된 때와 국회의원, 지자체장, 지방의회의원에 궐원이 생긴 때에 실시되는 선거를 말한다. 내년 4월에 치러질 보궐선거는 광역단체장 2명, 기초단체장 2명, 광역의원 3명, 기초의원 5명이다. 그 중 단연 압권은 서울과 부산의 두 광역단체장 선거이다. 한 사람은 고인이 되었고 한 사람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더불어민주당 소속과 성추행이었다. 두 사람은 각각 자살과 사퇴를 선택했다. 여기에서 문제의 핵심 뇌관으로 떠오른 것이 당헌이다. 더불어민주당 당헌 96조 2항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 선거를 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 당헌은 2015년 현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혁신위원회가 만든 조항이다.
사건이 터졌을 때는 무공천의 당내 기류가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기류는 말끔하게 정리되어 모두들 입을 다물게 되었다. 서울과 부산 시장 선거는 2022년 대선의 전초전이기에 민주당이 당헌 개정에 나선 가장 큰 이유이다. 눈앞의 이득이라면 자기들이 만든 당헌도 헌신짝처럼 버리는 게 정치꾼들의 습성이다. 당헌을 바꾸는 투표가 지난 31일과 1일 오후 6시까지 진행되었다. 결과는 빤했다. 그들만의 리그에 이변이 있겠는가?
투표에 앞서 민주당 대표는 성추행 의혹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마음을 다해 사과드린다.”라고 말했지만, 야권의 반발과 빈축을 샀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야권의 반발은 공허한 메아리로 들려올 뿐이다. 여당과 야당 어쩌면 똑같은 철면피 얼굴들인지 2017년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 의원 부인이 선거법을 위반해 치러진 재선거에 자유한국당이 후보를 내자, 야당은 이렇게 비판했다. 그 때 야당 대표는 현 법무부 장관이었다. “자유당에서는 후보를 내지 않아야 마땅하다. 유감스럽게도 자유당은 애초 무공천 방침을 바꿔서 다시 공천하기로 어제 결정했다고 한다. 참으로 후안무치한 행태가 아닐 수가 없다.” 이쯤 되면 여당이나 야당이나 얼굴 두껍기가 실측불가이니 누가 누굴 탓하랴? 우리나라의 정치는 저 아래 후진국쯤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
헌법을 쉽게 개헌할 수 없듯 당헌도 마찬가지이다. 입맛에 맞게 주무르는 당헌이라면 있으나마나하다. 그런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당 대표는 미끈하게 세탁된 말로 국민들을 현혹시키려했다. “후보를 내지 않는 것만이 책임 있는 선택이 아니고, 오히려 공천으로 시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 책임 있는 도리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겉과  속이 다른 내로남불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표준말은 아니지만 ‘쿨’하게 공천 후보자를 내지 않겠다고 천명을 하고 자숙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오히려 약속을 지키는 정당이라며 국민들도 ‘쿨’하게 지지를 보여주지 않았을까?라는 어리석은 생각도 해본다. 그 때가 가까워오면 나라는 또 얼마나 국론분열이 될지 벌써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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