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원<동화작가>

소설 절기에 눈 대신 겨울비가 지척지척 내렸다. 비가 내려 더욱 스산한 마음이다. 기온도 뚝 떨어졌다. 더 이상 떨어뜨릴 것 없는 옷 벗은 나목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모든 것 다 벗어 던지고 겨울잠에 들어가는 나목들은 어떤 마음일까? 새 봄을 맞이하기 위해 침잠하는 나무들이 부럽다. 사시사철 내내 우리들에게 기쁨과 안식을 주는 나무들이 고맙기까지 하다. 
이제 달력도 한 장 밖에 남지 않았다. 다른 여느 해보다 심신이 고달팠던 한 해였다. 코로나19가 들쭉날쭉 삶을 들었다 놓고, 출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 주택난도 그렇다. TV를 보다가 정치권 뉴스만 나오면 꺼버린다. 몸 일부가 자동 리모컨이 된 것 같다. 이젠 더 이상 들을 말도 없고, 들었다간 심신만 고달프다. 그래도 귀가 두 개 씩이나 달려 있는 데 어쩌랴.
서울과 부산의 보궐선거 문제, 선거의 미끼로 이용하려는 가덕도 신공항 문제, 주택난 해소용으로 호텔을 주거용으로 만든다는 기상천외한 정책…. 사람이 살다보면 실패할 때도 있다. 그러면 그 실패를 수용하고 더 나은 길로 가면 된다. 그러나 이 정부는 그렇지 않다. 진심을 담은 미안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오히려 좋아질 거라는 그들만의 낙관론을 듣는다는 것, 이제는 역겹기까지 하다. 신물이 난다. 기획재정부 수장은 사표를 낸다고 공언했다가 청와대의 칭찬 한 마디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자리에 연연하고 있다. 자기가 뱉은 말에는 절대 책임을 져야하는 게 정치철학의 기본자세 아닌가?
말에도 품격이 있다. 품격 있는 말로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하는 게 바른 정치인이다. 양아치, 모리배, 똘마니란 거친 말들이 난무한 해였다. 지난 5일, 여성가족부 수장의 답변은 오래오래 남을 명언(?)이 되었다. 국회에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두고 한 말이었다. 보궐선거에 드는 막대한 혈세와 성 피해자들과 여성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느냐? 라는 질문에 전대미문의 답이 돌아왔다. “큰 새로운 예산이 소요되는 사건을 통해 국민 전체가 성인지에 대한 집단 학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도 생각하고 있다.”라는 말이었다. 살다 살다 이런 망언은 처음 듣는다.
법무부 수장의 궤변은 1년 내내 심신을 고달프게 만들었다. 그가 하는 일은 오로지 검찰총장 한 사람을 내쫓는 데에 있는 듯했다. 이젠 대놓고 직접 검찰총장을 감찰하겠다고 한다. 그런 수장을 떠받드는 학자의 궤변도 나왔다. 국민의 심신을 참 고달프게 만들고 있다. 
대학교 교수가 지난 20일 페이스북을 통해 “법무부 장관은 2020년 이순신 장군.”이라고 떠벌렸다. 이순신 장군이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설 일이다. 아무리 가재는 게 편이라 해도 학자의 본분을 지켜야 할 게 아닌가. 지난 9월엔 민주당 원내 대변인이 법무부 수장의 아들을 안중근에 비유를 해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더니…. 같은 날 20일, 민주당의 한 의원은 “국민이 원하는 시대정신은 윤석열 스타일이 아닌 추미애 스타일”이라고 거들었다. 이 의원은 얼마나 허무맹랑한 말을 쏟아내는지 알아주는 사람이다. 최순실 비자금 문제, 윤지오 후원인 자처로 여론에 방방 뜨더니 그 이후 책임지는 말을 아직도 들어본 적이 없다. 또 한 의원은 “아파트라는 환상을 버리면 훨씬 더 다양한 주거의 형태가 가능하다.”라는 어불성설의 기자회견을 했다. 여론의 집중포화를 얻어맞고 사과를 하고 말았다. 참 지지리도 못난 사람들이다. 정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신세계에 와 있는 기분이 든다.
말도 품격이 있다. “말이 있기에 사람은 짐승보다 낫다. 그러나 바르게 말하지 않으면 짐승이 그대보다 나을 것이다.”라고 말한 시인이 있다. 사람이 정치권에 들어서면 짐승으로 변해야 연명하는 것일까? 우리 속담에도 ‘칼은 몸을 베고 말은 마음을 벤다.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깊다.’라는 말이 있다. 국민을 위한 정치인이라면 수족처럼 생각하며 명심해야 할 말이다.
라디오에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란 가요가 흘러나오고 있다. 맞는 노래 같기는 한데 어딘지 가슴 한 구석이 스산하기만 하다. 

안산신문  ansansm.co.kr

<저작권자 © 안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