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열린글밭 칼럼 서평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 안산신문
  • 승인 2021.04.07 09:51
  • 댓글 0
안도현, 한겨레출판사

 눈길이 오래 머무는 책이다. 오감을 자극하는 안도현의 시작법을 읽을 때 주의사항이 있다면 향기로운 똥에 유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작가는 시를 대변이 아닌 똥으로 발음한다. ‘똥’ 발음만으로도 코를 감싸 쥐게 하는 이 향기는 절대로 무시하고 멀리해서는 안 되며 겸허히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고 관찰하고 친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런 생각 덕분에 「사라진 똥」 (32쪽) 시 한편을 얻었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독자에게 다섯 가지 맛을 느낄 준비가 되어있기를 권한다. 단맛, 신맛, 매운맛, 쓴맛, 짠맛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오미자처럼. 글의 재료 중 어떤 맛이 강할지는 독자의 몫일 것이다.
 좋은 문장은 어디에서 나올까? 조선시대 학자들도 좋은 문장은 읽기에서 나온다고 가르쳤다. 시든 산문이든, 많이 읽고 많이 써야 비로소 내 것이 되는 문장이 찾아온다. 실학자 최한기 선생은 좋은 문장은 하루아침에 쌓을 수 있는 잔재주가 아니라 오랜 세월 노력이 쌓여야 한다고 했다. 다산이 문장 공부를 하러 온 변지의라는 제자에게 한 말처럼 사람이 글을 쓰는 것은 나무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뿌리를 북돋고 줄기를 바로 잡고 나면 진액이 오르고 가지와 잎이 돋아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다. 갑작스레 꽃은 피지 않는다.
 이 책은 필사하기 좋은 시와 문장들이 많다. 필사를 하다보면 놓친 문장이 들어오고 읊다보면 작가의 내면의 소리가 들려와 좋다. 좋은 문장은 시적인 것에서 나온다. 안도현 시인은 시마와 동숙할 준비를 하고 언제 어디서든 메모지와 펜을 챙기고 받아쓸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인이란, 받아쓰는 사람이기에 영감을 받아 적어두지 않으면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 또한 시를 쓰면서 시적인 순간은 쉬이 찾아오지 않는다. 곳곳에 있지만 잡아채기란 쉽지 않다. 조바심을 낼 때가 많다. 시마와 동숙할 준비를 하고 친해지기로 한다.
 작가는 빈둥거리며 노는 시간을 발효와 숙성의 시간이라고 부른다.(85쪽) 어슬렁거리며 걷다가 어느 날 ‘이유 없이 배회하는 자를 112에 신고합시다’ 현수막까지 나붙을 정도였다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나 역시 걷다가 만나는 모든 사물은 시의 재료가 된다. 글을 쓰기 위해 이 재료들을 호주머니에 넣고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가슴에 담아와 며칠 발효가 되기를 기다린다. 작가의 말처럼 모든 길은 세상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훌륭한 통로가 된다.
 시를 읽을 때 선뜻 눈에 들어오지 않는 단어들이 있다. 관념적인 한자어다. 관념적인 한자어(125쪽)는 시에 품위를 지켜주기는커녕 낙제 수준이라고까지 말한다. 예를 들면 관망 낭만 번뇌 상징 생명 희망 등 시에 관념어가 많다. 추상적인 시어를 배제해야 시가 진부하지 않다. 딱딱한 개념어보다 말랑말랑한 시어를 찾아 쓴다면 시에 한 장의 그림이 완성될 것이다.
 그렇다면 시를 가슴으로 쓸 것인가, 손끝으로 쓸 것인가? 이 말은 곧 작품의 진정성이냐 표현기술이냐를 묻는다. 작가는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쓰고 엉덩이로도 쓰면서 가슴으로는 붉고 뜨거운 정신을 찾고 손끝으로는 푸르고 차가운 언어를 매만지며 엉덩이를 묵직하게 방바닥에 붙이고 시에 몰두하라고 말한다. 감성이 녹슬지 않게 신체의 감각기관을 열어두고 지성이 바닥나지 않게 책읽기를 밥 먹듯이 하며 골고루 비벼야 한다고 말한다.(188쪽)
 시의 형식보다 온몸으로 써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정현종 시인은 “가지에 부는 바람의 푸른 힘으로 나무는 자기의 생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는 시를 썼다. 이렇게 흔들리는 기쁨을 소설가 박범신은 “문학, 목매달아 죽어도 좋을 나무“ 라고 표현했다.
 한편의 시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퇴고를 즐기라고 말한다. 퇴고란 맨 마지막이 아닌 글쓰기의 처음이면서 중간이면서 마지막인 모든 것이라고 하니 끊임없이 고치되 꿰맨 자국이 보이지 않는 천의무봉의 시도 퇴고에서 나온다는 점을 상기한다.
 불안이 가득한 시기이다. 책을 읽으며 내면을 탐구하는 일이 즐겁지만은 않지만 모든 대상을 시적인 눈으로 바라본다면 마음이 따스해질 것이다. 질베르 뒤랑은 상상력이란 “세상과 사물을 맺어주는 비밀스러운 끈”이라고 했다. 이 책에 나오는 시를 필사하면서 상상력을 마음껏 가동해보기로 한다.

홍혜향 (혜윰서평단)

안산신문  ansansm.co.kr

<저작권자 © 안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안산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