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 히가시노 게이고 출판사 : 자음과모음

  작년 9월 서대문구 햄버거 가게 앞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6살 아이가 사망한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지난 1월에 열린 1심 판결에서 가해자에게 징역 8년이 선고됐다. 판사는 ‘피고인은 음주운전으로 벌금형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어 엄중한 처벌을 해야 한다. 유족들이 용서할 뜻이 없고 피고인과 연락하는 것을 원치 않아 전해지지는 못했으나 사고 직후 구속된 피고인이 반성문 형태로 거듭 피해자와 가족들에 대한 죄송한 마음과 자신에 대해 후회하는 내용을 적어낸 점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형량을 정했다“라고 한다.
 이런 판결이 내려지자 피해자 가족들은 오열하며 “판사님 너무 하십니다. 우리나라 사법부와 재판부가 원망스럽다. 음주운전은 재판부와 사법부의 책임이다”라고 울부짖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떠오른다. 자식을 가진 부모로서 참으로 참혹한 슬픔이 느껴진다.

  최근 사회적 약자 관련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사회는 갈수록 사회적 약자들의 보호정책과 방지대책을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 법원은 사건 발생의 원인을 예방할 수 있는 강력한 처벌 보다는 가해자에 치우치는 판결과 인권 등의 사유로 대다수 국민들의 법 감정에 부합하지 않는 판결을 내리고 있는 듯 보인다. 그때마다 이런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누구를 위한 판결인가? 누구를 위한 법인가? 사건 피해자 유족의 마음이나 고통을 진정으로 헤아려 줄 수 있는 방법이나 제도는 과연 없는 것일까?

  <나미야잡화점의 기적>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일본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공허한 십자가>는 이러한 의문에 대한 끝없는 이야기다.
   주인공 나카하라는 평범한 샐러리맨이다. 그러나 아내 사요코가 잠시 저녁 찬거리를 사러 집을 비운 사이 들어온 강도에게 사랑하는 외동딸을 잃는다. 범인은 곧 잡히고 딸을 잃은 부부의 목표는 범인의 사형선고다. 여러 차레의 재판 끝에 범인은 사형을 선고받는다.  “사형이 확정되고, 판결이 종결되면, 자신들의 마음에도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러나 실제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형이 확정되었다고 해서 (딸)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형식적인 면에서 사건이 끝났을 뿐, 자신들의 손에 들어온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통감”한다. 그들 부부에게 남은 것은 허탈감과 깨진 가정뿐이다.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이 잃어버린 것은 비단 딸만이 아니었다. 크고 작은 소중한 것을 수도 없이 잃어버렸다. 힘들게 손에 넣은 집도 재판 도중에 팔아버렸다. 그곳에 사는 것이 너무도 괴롭다”, “아내의 환한 웃음을 볼 기회를 잃어버렸다.” 결국 그들은 서로 아픔만 껴안은 채 이별을 선택한다. 자식을 예기치 않게 잃은 유족의 억울한 심정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한 살인범에 의해 평범했던 한 가정은 이렇게 무너진다. 그리고 몇 년 뒤 사요코도 길에서 살해당한다. 이렇게 딸과 아내를 모두 잃은 나카하라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직면하며 그 녀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은 지금까지 딸의 사건에서 도망치려고만 했는데, 사요코는 그 사실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며 ‘사형 폐지라는 이름의 폭력’이라는 책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는 다시 새롭게 시작된다.

  이 소설에는 살인자가 여럿이 나온다. 사요코의 딸을 살해한 히루카와, 사요코를 살해한 사쿠조, 막 태어난 갓난아이를 살해한 후미야와 사오리. 그들의 인생 이야기와 살인 사건의 유족들 간의 서로 얽혀있는 관계 속에서 숨겨졌던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면서 충격적이기도 하고 사형과 죄 값, 반성, 공허한 십자가 ...... 수많은 단어들이 지나간다.
  또한 작가는 살인자들의 각기 다른 이유와 상황, 그리고 살인 후의 태도를 보여 준다. 히루카와는 생계형 범죄로 반성이라는 것조차 없이 사형 선고를 받고, 삶에 대한 의지나 생각 없이 귀찮다고 항소하지 않고 그냥 사형을 받는다. 사쿠조는 별 볼 일 없고 막 사는 인생 속에서 자신의 딸 하나에가 좋은 남자를 만나고, 게다가 자신을 챙겨주는 사위 후미야를 위해 살인을 한다. 후미야는 치기어린 젊은 날의 불장난 때문에 저지른 살인을 반성하며 훌륭한 소아과 의사가 되어 아이들을 살리고, 봉사하며 열심히 산다. 그리고 자살하려던 임산부 하나에와 우연히 만나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하여 배다른 아들과 함께 산다. 사오리는 후미야와 함께 저지른 살인에 대한 죄책감이 너무 심해져서 자해하고, 몇 번이나 자살 시도한다. 결혼도 평탄하지 못해서 이혼 후 술집에서 일하며 도벽까지 생겨서 힘들게 산다. 그리고 작가는 사형제도에 관하여 사요코와 하나에를 통해 독자들에게 이렇게 전한다.  

  강도에게 딸을 잃고 그 자신마저 살해당한 사요코는 말한다.
  “가령 사형 판결이 나온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유족의 승리가 아니다. 유족은 그것을 통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다만 필요한 순서, 당연한 절차가 끝났을 뿐이다. 사형 집행이 이루어져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겼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고,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일도 없다. 그렇다면 사형이 아니라도 상관없지 않느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만약 범인이 살아 있으면 '왜 범인이 살아있는가? 왜 범인에게 살아 있는 권리를 주는가?'라는 의문이 유족의 마음을 끊임없이 갉아 먹는다. 사형을 폐지하고 종신형을 도입하라는 의견도 있지만, 유족의 감정을 털끝만치도 이해하지 못한 말이다. 종신형에서 범인은 살아있다. 이 세상 어딘가에서 매일 범인은 먹고,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어쩌면 취미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상상하는 것은 유족에게 죽을 만큼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몇 번씩 끈질기게 말하자면, 사형 판결을 받는다고 유족의 마음이 풀리는 건 아니다. 유족에게 범인이 죽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흔히 죽음으로 속죄한다고 말하는데, 유족의 입장에서 보면 범인의 죽음은 '속죄'도 '보상'도 아니다. 그것은 슬픔을 극복하기 위한 단순한 통과점이 불과하다.”

  살인자 후미야의 아내 하나에는 다음과 같이 항변한다.
  “만약 그때 남편을 만나지 못했다면 전 틀림없이 죽었을 거예요. 아이도 태어나지 못했을 거고요. 그래요, 남편은 분명히 21년 전에 한 생명을 죽였는지 몰라요. 하지만 그 이후에 두 생명을 구했어요. 그리고 의사로서 많은 생명을 구하고 있어요. 남편 덕분에 얼마나 많은 난치병 아이들이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지 아세요? 남편은 지금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작은 생명들을 구하고 있어요. 그래도 남편이 지금까지 속죄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세요? 교도소에 들어가도 반성하지 않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어요. 그런 사람이 등에 지고 있는 십자가는 아무런 무게도 없을지 몰라요. 하지만 남편이 지금 등에 지고 있는 십자가는 그렇지 않아요. 너무나 무거워서 꼼짝도 할 수 없는, 무겁고 무거운 십자가예요. 나카하라씨, 아이를 상해당한 유족으로서 대답해보세요. 교도소에서 반성하지 않고 아무런 의미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과 제 남편처럼 현실 속에서 다른 사람을 구하면서 사는 것, 무엇이 진정한 속죄라고 생각하세요?”

  <공허한 십자가>라는 제목은 사요코가 쓰고 있던 원고인 ‘사형 폐지라는 이름의 폭력’에서 나온다. 작가는 사형제도가 있어야 하는 이유와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난 사람을 죽인 사람은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라는 사요코의 입장에 충분히 공감하며 무조건 사형에 처하고 엄벌하여 다시는 이 땅에 같은 범죄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수 있다. 그러나 사형제도가 존속되어 범죄자에게 사형이라는 중죄가 내려진다 하여도 그 범죄자가 전혀 반성하지 않고 무의미하게 죽어간다면 과연 사형이란 제도가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사형은 무력하다? 사형은 무력하지 않다? 속죄는 무엇일까? 꼭 교도소에 들어가야만 속죄한다고 할 수 있을까? 가해자를 사형에 처하면, 가해자는 어떻게 속죄할 수 있을까? 우리의 형벌 시스템은 범죄예방을 위한 제도적 장치와 피해자의 유족에 대한 배려가 있는가? 라는 끝없는 의문과 고민을 가지게 한다. 결국 이 소설은 범죄자에게 어떤 형벌을 내리고 판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자신들이 지은 죄를 속죄하기 위해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를 강조하고 있는듯하다. 살인자를 공허한 십자가에 묶어두고 감옥 안에서 허송세월을 보내게 하는 것과 일상에서 평생 마음의 부담을 안고 속죄하고 또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도록 평생 십자가를 등에 지고 살게 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있는 것인지를. 최근 ‘노원구 세모녀 살인사건’을 보며 또다시 <공허한 십자가>를 펼쳐본다.   
  “만약 최초의 사건에서 히루카와를 사형에 처했다면 내 딸은 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내 딸을 죽인 사람은 히루카와지만, 그를 살려서 다시 사회로 돌려보낸 것은 국가다. 즉, 내 딸은 국가에 의해 살해된 것이다.” 사요코의 말이 자꾸만 귓가에 맴도는 것은 왜일까.

임기성<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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