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문학동네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하얀 풍선이 있는 디자인과 달리 촌스런 이름의 소설 <복자에게>는 그저 그런 회고담적 내용이려니 하는 첫 느낌과 다르게, 인간의 보편적 불행과 슬픔을 보듬은 책이다.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 등 많은 문학상을 연달아 수상한 작가 김금희의 두번째 장편소설인 <복자에게>는 서울에 사는 ‘이영초롱’이 초등학교 6학년때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고모가 있는 고고리 섬으로 전학을 간 모습으로 시작된다. 섬에서 ‘고복자’를 만난 영초롱은 큰 파도가 밀어닥치고 포말이 부서지는, 펄펄 뛰는 자연 앞 할망당에서 집안 망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이후 둘은 단짝이 되어 지내다가 마을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인해 멀어지게 된다. 서로 화해하지 못하고 2년 만에 다시 서울로 올라간 영초롱은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자신의 꿈인 판사가 된다. 그러나 꿈꾸던 이상과 달리 직업인 판사로서 회의를 느끼던 그녀는 법정에서 욕설을 한 이유로 제주도로 좌천되고 복자와 다시 만난다. 한 의료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유해물질에 노출되어 유산을 한 복자는 같은 피해를 입은 간호사들과 산재인정을 받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고, 증거자료를 놓고 의료원 측과 힘겹게 싸운다. 소송은 영초롱이 근무하는 법원에 배당되고, 배석판사로 그녀의 이름도 올라간다. 재판부가 의료원 측의 논리에 힘을 실어주며 재판이 형식적으로 흘러가자 영초롱은 이에 반발하여 피해자 논리의 합리성을 주장하다 거대한 벽을 넘지 못하고 결국 사표를 내고 프랑스로 떠난다. 소송은 8년여 만에 마침내 피해자 측의 승소로 끝난다.
   2020년 1월 20일은 국내에서 첫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한 날이다. 그날부터 오늘까지, 감염병 재난의 최전선에서 싸워온 사람은 현장 의료진, 그 가운데에서도 간호사를 빼놓을 수 없다. 포털사이트에서 ‘간호사’를 검색하면 ‘코로나19 영웅’으로 명명하는 수식어와 함께 ‘열악한 근무환경’, ‘노동자’, ‘부당처우’ 등도 함께 등장한다. 최근 보건의료 노조 총파업 직전 합의 등 이슈로 그들에 대한 처우가 그 어느 때보다 국민적 관심이 높은 시기에, 질병이나 유해물질로부터 감염 우려가 높은 간호사들의 실제 산재사건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복자에게>는 현시성이 있다. 더 나아가 소설은 판사, 보건소 의사, 신문기자, 해녀, 알바 등 다양한 직업세계에서 근로여성의 애환을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한 때 여자 후배들의 멋진 롤 모델이었던 양선배의 이야기는 애잔하다. 모두가 선망하는 전문직업인 판사라 해도 일과 가정 중에 선택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사회가 많이 변했고, 여성의 인권은 날로 높아지며 남녀평등이 실현됐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임신기 여성은 직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저출산’, ‘인구절벽’을 운운하며 여성에게 임신을 이야기하지만 임신, 출산, 육아의 어떤 부분에도 남성과 평등한 위치와 환경은 미흡하다. 다만 엄마로서 죄책감에 물들게 한다. 이제 많은 여성들이 경제적, 환경적 이유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하는게 현실이다. 문제는 출산이 아니라 육아다. 우리나라도 프랑스처럼 국가가 직접 육아에 책임지고 나서야할 때라고 생각된다. <복자에게>는 근로 여성의 처지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멀리는 4.3사건에서부터 가깝게는 사법부의 블랙리스트 파문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에 형성된 기득권층의 카르텔을, ‘향판’이라 불리는 판사와 지역유지들과의 친목모임을 고발하기도 하는 사회성 짙은 소설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두운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섬이라는 이색적 배경과 판사라는 일반인이 접하기 힘든 직업을 소재로 작가 특유의 농담과 드라마 대사 같은 감각적인 처리, 절묘한 감정 묘사, 제주 섬 방언까지 다양한 내용들을 잘 버무려 놓아 독자들에게 재미와 따뜻함도 선사한다. 또한 글을 쓴 시기가 2020년 즈음임을 상징하는 단어인 ‘티엠아이’, ‘팬데믹’, ‘용인대 체육관’, ‘전자담배’, ‘법조계의 이효리’, ‘노출 콘크리트 인테리어’, ‘MBTI’, ‘엡’, ‘기레기’, ‘기렉시트’ 등을 이곳저곳에 노출시켜 친숙함도 준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실패에 대한 치유의 구체적인 과정이 없이 끝나 버렸다는 점과 가장 변화가 느리다는 법조계에서 부당함에 대한 반항으로 통쾌함을 선사해준 영초롱이 결국 차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판사직을 떠난 점이다. 육아의 권리를 결국 포기하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양선배처럼, 영초롱도 현직에 남아 기성 질서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힘없는 서민의 보호자로 한걸음 더 진전하는 자긍심을 후배 판사들에게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아니 소설이니 가능한 꿈이었겠다.

임기성(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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