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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담긴 가을
  • 안산신문
  • 승인 2021.10.06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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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소설가>

 나는 비가 오는 날 따뜻한 방에 엎드려 음악을 틀어 놓고 삼류 소설을 읽는 소박한 취미를 즐겼다. 침대를 사용하는 요즘 따뜻한 방바닥도 없을뿐더러 빗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읽어야 할 책은 산더미처럼 쌓여서 한밤중에야 책을 읽다 보니 음악도 들을 수 없다. 현장에서 체험하기보다는 언젠가부터 책에서 얕은 지식을 얻기에 급급하게 살아왔다. 책을 펼치는데 말린 단풍잎이 떨어졌다. 도대체 이런 것이 내 책에 끼어 있을 리가 없었다. 소녀 적에는 즐겨했으나 지금은 그런 감성을 가진 사람들이 희귀한 세상이다 보니 책 속에서 단풍잎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오래전부터 김해에 사는 친구는 단풍 구경을 하러 오라고 했다. 가까운 곳에도 단풍으로 유명한 곳이 많은데 평야 지대인 김해까지 단풍을 보러 가기에는 너무 멀었다. 그곳은 단감나무 주산지인데 단감나무 단풍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며 꼭 내게 보여 주고 싶어 했다. 그러겠다고 하고는 몇 년이 지나도 친구와의 단감나무 아래서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해마다 친구가 보내 준 단감을 보면서 단감나무 단풍은 친구의 마음처럼 고울 것처럼 여겨졌다.
 그해 가을에도 어김없이 단감은 배달됐다. 상자 안에는 감잎과 여러 가지 예쁜 낙엽도 담겨 있었다. 주황색 단감보다 더 예쁜 감잎. 친구가 보내 주는 단감도 너무 소중해서 먹기가 아까운데 친구는 낙엽까지 보내 준 것이다. 나는 감동을 받고 사춘기 소녀처럼 감잎을 책갈피에 넣어 두고 만나는 사람에게 자랑했다.
 나는 가끔 친구에게 책을 보냈다. 들일로 바빠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친구에게 그것도 내가 읽기도 벅찬 내용들을 말이다. 그래야만 내가 좀 수준 있어 보인다고 생각했던가 보다. 그래도 친구는 항상 고맙다는 말과 함께 독후감을 이야기했다.
 이 년 전인가 친구는 단감나무 과수원을 정리했다고 했다. 단감나무 단지가 개발되면서 보상을 받고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는 부산으로 이사를 했다. 내 마음속에 친구는 여전히 주홍빛 단감과 함께 김해에 살고 있는데. 친구와 거닐고자 한 단감나무 단풍 진 그늘을 걸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니 몹시 그리워졌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곳이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산비탈에 수도 없이 매달린 주홍빛 단감과 붉은 단감나무 이파리가 있는 풍경. 그 아련한 풍경이 고향처럼 여겨졌다. 이젠 아파트가 들어서고 공장이 들어선 그곳을 갈 일은 아주 없어져 버렸다. 친구가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 주고자 할 때 다녀오지 못한 일이 후회되었다. 친구가 영원히 그 동네에 살 것이라 믿었다.
 요즘은 친구와 서울에서 만나기도 하고 내가 부산엘 가기도 한다. 김해에 살던 이야기를 하면 친구는
 “니가 보낸 책들 억수로 어렵더라. 도시 사람들은 다 너처럼 그런 어려운 책 읽는 줄 알고 수준 맞춘다고 내가 머리 아파 죽는 줄 알았다. 재미있는 책도 많은데 하필 그렇게 어려운 책만 읽노? 요즘은 도시에 사니까 책 읽을 시간도 많고 재미있는 책을 파는 서점도 가까이 있는데 책도 안 사고 글도 안 읽는다. 참 이상하지? 하는 일도 없는데 도시 생활은 너무 바빠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네가 바빠서 동동 그린다는 말이 이해되더라.”
 사람들은 항상 그에 걸맞은 핑계를 댄다. 기회가 지나고 나면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기회인지도 모르고 지나간다. 여전히 바쁘지만 이 가을 단풍 구경을 떠나기로 했다. 우리는 옛날처럼 낙엽을 책 가득 담아 와서 누군가에 추억을 되살리는 선물로 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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