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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 안산신문
  • 승인 2021.10.1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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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진 장편소설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의 장편소설 《파친코》는 이런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역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을 망쳐 놓았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은 개의치 않고 살아남았다. 끈질기게 삶을 이어나갔다.
  두 권으로 구성된 장편소설 《파친코》는 1910년대부터 1989년까지 4대에 걸친 자이니치(ざいにち, 재일교포, ‘일본에 사는 외국인 거주자’) 가족의 삶을 간결한 문체로 풀어냈다.
  작가가 이 소설을 기획한 건 1989년 예일대 역사학과 3학년, 선교사의 강연에서 들은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다 목숨을 끊은 일본 중학생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고서다. 작가는 2007년부터 4년간 일본 도쿄에 거주하며 재일 조선인 수십 명을 인터뷰했다. ‘자이니치’가 겪는 멸시와 차별에 대해 추가적인 자료 수집을 하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옛 원고를 버리고 2008년에 다시 집필하기 시작했다. 소설에는 등장인물이 독립운동이나 신사참배 위반으로 체포되어 투옥 후 사망하거나 나가사키 원폭 피해 등으로 일본에 의해 희생하거나 ‘재일조선인북송사업’ 등의 에피소드를 배치하여 일제강점기, 광복, 한국전쟁, 분단 등의 한국 근현대사의 배경을 넣어주었고 일본 현지 사정과 풍습 등을 넣어 현실감 있는 역사 소설처럼 느껴지게 한다. 이야기의 기획부터 탈고까지 30년이 걸렸다고 하니 이런 에피소드들이 작가의 엄청난 취재 결과물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파친코》는 4대에 걸친 인물 하나하나가 뚜렷하고 살아있다. 그 인물마다 서사가 있다. 이를 위해 작가는 실존 인물들을 인터뷰하여 ‘자이니치’들의 분열된 정체성과 ‘파친코’와의 관계를 사실에 기반하여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가 독자들을 소설 속에 빠져들게 한다.
  이야기는 부산 영도에서 시작된다. 언청이에 절름발이인 훈이와 가난한 집 막내딸 양진은 결혼하여 함께 하숙집을 운영하며 선자를 키운다. 이후 훈이 결핵으로 죽자 양진은 홀로 온갖 궂은일을 하며 선자를 키운다. 그 후 선자의 인생에 소용돌이가 친 건 생선 중매상 한수를 만나 임신을 하면서다. 그러나 한수가 유부남인 걸 알게 된 선자는 절망에 빠진다. 같은 시기 목사 백이삭은 형 요셉이 사는 오사카로 가기 전 잠시 부산에 들른다. 이를 알게 된 이삭은 선자를 가엾게 여겨 요셉과 그의 부인 경희에게 상황을 말하고 선자와 함께 오사카로 향한다. 선자는 노아를 낳고 이삭의 아들인 모자수를 낳는다. 공부를 잘해 와세다 대학을 다닌 노아와 공부에는 영 소질이 없어 중도에 그만둔 모자수. 그리고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 4대에 걸친 그들의 운명과 ‘파친코’는 어떤 관계일까?
  한국, 일본 그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삶, 두 문화 사이에 끼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혼란을 경험한 인물들의 괴로움은 소설이 전개되어 갈수록 극에 달한다. 이런 역사가 준 역경을 개인과 가족이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주목한다. 인생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기대하는 ‘파친코’에 비유하면서도 희망에 여지가 남아 있다고 말한다. ‘역사가 망쳐 놓았지만’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부여된 것은, 바로 ‘삶’이다. ‘죽음’이 찾아오기 직전까지, 삶은 계속되니깐.
  일부 독자는 여성을 남성에 의존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그리고 있다는 점을 다소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 또한 “여자의 운명은 고생길을 걷는 것”이라는 대사의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실제로 만난 한국 근현대 여성의 희생적 삶의 모습을 소설 속에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또 다른 사료적 가치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소설 《파친코》 속 오사카 츠루하시역 이카이노, 지금 그들을 만나러 가보자.

이소영 (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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