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원<동화작가>

대통령 선거일이 1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지지층에서는 시간이 흐름이 아쉽겠지만, 반대쪽은 남은 시간마저도 지긋지긋해 할 것이다. 3월 9일이면 새 대통령이 선출된다. 현 대통령의 임기 만료일은 5월 9일이지만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정권 말기가 되면, 그동안 숨겨져 왔던, 숨기려 했던 정치 치부들이 솔솔 튀어나온다. 원전사태의 치부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내 원전은 도산위기에 빠뜨려놓고, 대통령은 외국에 나가 우리나라 원전의 안전성과 우수성을 홍보하기 바쁘다. 어불성설의 극치 아닌가?
시작은 거창했으나 1년이 지난 지금, 초라하기 그지없는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공수처(空手處)라고 조롱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국민은 대장동 사건의 비리 전후를 알고 싶어 해도 사정당국은 유야무야 시간만 끌고 있다. 정부는 물론, 대선 후보들도 재난 지원금 퍼주기에 신바람이 났다. 이로 인해 국가채무 규모는 사상 처음으로 1,000조 원을 돌파하게 되었다. 국민 1인당 국가채무도 최초로 2,000만 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혈세인 국민의 세금을 나라발전의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적재적소에 써도 어려운 판국이다. 대선후보들이 마구 내놓는 공약대로라면 이미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나라로 되었어야 할 것이다. 어느 정권이나 대선 전후를 비교하면 공통된 게 용두사미 정부이다. 시쳇말로 이번 대선은 덜 나쁜 대통령을 뽑는 것이라는 자학적인 이야기까지 나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는 왠지 서글프고 분하기까지 하다. 선관위 상임위원이 대통령의 연임장을 받고도 결국 사퇴하는 초유의 일도 생겼다. 울화통이 터져 왈가불가하고 싶지도 않다.
이맘때쯤이면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면 정치 용어가 있다. 바로 대통령의 레임덕이다. 레임덕(Lame duck)은 절름발이 오리를 의미한다. 임기 말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큰 문제가 생길 때 오리가 발을 절며 걷는 것과 비슷하다고 붙은 정치 용어이다. 처음에는 경제 용어였다. 채무 불이행 상태의 증권 거래인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그러다가 미국의 16대 링컨 대통령 재직 시, 야당의 정치인들이 대통령에 반대하는 행동을 하는 것에서 정치적 용어로 변모하였다고 한다.
정부 형태에는 대통령 중심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입헌군주제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 중 레임덕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 대통령 중심제 국가이다. 우리나라처럼 대통령 중심제는 레임덕에 가장 취약하다. 야당에 패배한 대선은 말할 것도 없지만, 여당이 정권 재창출 시에도 레임덕은 피해갈 수 없다. 임기 말년의 대통령과 일정 거리를 두면서 새롭게 지지층을 확대해야 하고 새 정책은 기존의 정책과 부딪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레임덕 사례는 그야말로 줄줄이 사탕 격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으로 인해 하야하고 말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헌법 등 말년에 지지를 잃고 심복 김재규의 총에 맞아 생을 마감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 민심의 악화 속에 6월 항쟁이 일어나자 6.29 선언과 함께 불명예스러운 임기를 마쳤다. 노태우 대통령도 수서 비리 사건 등으로 마찬가지였다. 김영삼 대통령은 아들 김현철의 뇌물 비리와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지면서 속수무책 레임덕에 빠지고 말았다. 김대중 대통령도 친척 비리와 불법 대북송금 사건이 터지면서 극심한 레임덕에 빠졌다. 노무현 대통령도 각종 측근 대형비리 사건으로 레임덕에 빠졌다. 이후 안타깝게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레임덕에 빠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로 결정타를 얻어맞아 레임덕에 빠졌고 탄핵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옥살이하다가 올 정월 초 사면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아직도 감옥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정권 말년을 돌아보면 바람 잘 날 없던 부끄러운 역사의 한 페이지였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權不十年)이란 말이 새삼스럽다. 말년이 가까울수록 대통령은 더 고뇌하며 성찰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국민의 아픔을 다독여주고 다음 정부에 빚을 떠넘기지 말아야 한다. 모 후보의 ‘내가 대통령이 되면 월급도 안 받겠다.’라는 말이 신선할 정도이다. 현 대통령의 레임덕도 지켜볼 일이다.

안산신문  ansansm.co.kr

<저작권자 © 안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