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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GOD) 증후군
  • 안산신문
  • 승인 2022.02.09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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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소설가>

  변화는 이렇게 한순간에 찾아온다. 우리는 갓(GOD) 증후군이라고 명명했다. 내가 모든 것을 다해야 하고 내가 없으면 안 되고 내가 가장 옳다고 믿는 병이다. 어차피 완벽한 사람은 없다.
 지난가을에는 김장을 하지 못했다. 집 안에 바쁜 일도 많았지만 그래도 결혼 후 35년 동안 해왔던 연례 행사를 포기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11월 초에 한 친구가 김치를 선물해 주겠다고 했다.
 “내가 선물하는 것도 아니고? 그 힘든 김치를 얻어먹는다고? 왜?“
지인이 가정에서 김치를 만들어 파는데 자기네 김치를 주문하면서 집안일이 많은 내게도 선물을 하고 싶다고 했다.
”헐? 그것도 파는 김치를?“  
 그렇게 나는 김치 20킬로를 선물 받았다. 파는 김치라는 편견만 없다면 김치는 생각보다 맛있었다. 우리가 1년에 김장을 40킬로쯤 먹으니까 20킬로를 더 주문할까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동생이 농사지은 배추가 너무 많다며 20킬로 정도의 김치를 보내왔다. 처음에는 김장하지 않고 지나가는 일이 숙제를 하지 않은 기분이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하고 있는데, 나만 뭔가 잘못하고 있지 않나 불안한 기분이었다. 친구가 보내 준 김치나 동생의 김치는 내가 힘들여 담은 김치에 비해 맛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시던 1년 전만 해도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다. 해마다 김장은 집안의 연례 행사였다. 어머니는 김장 때 배추나 무, 각종 채소는 농사지은 걸 준비하고 젓갈이나 부재료는 가장 좋은 것으로 정성 들여 준비하셨다. 가족이 모두 시골에 모여서 300포기 정도 김장을 해서 여기저기 나누어 줘 가며 살았다. 우리 집 김치는 어머니의 긍지이고 자랑거리였는데, 다른 사람이 하는 김치도 맛있고, 더군다나 너무 편했다.
  변화는 이렇게 한순간에 찾아온다. 이제부터 나는 김장이라는 무겁고 큰 짐을 벗어버릴 것이다. 35년간 지속된 계획된 일도 이렇게 간단하게 엎어버리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친구들은 갓(GOD) 증후군이라고 명명했다. 내가 모든 것을 다해야 하고 내가 없으면 안 되고 내가 가장 옳다고 믿는 병이다. 어차피 완벽한 사람은 없다. 공장에서 만든 김치도 먹을 수 있고 지인이 주는 김치도 고맙게 얻어먹어도 된다. 이 상식을 깨우치는데 35년이 지났다. 아니 내 나이까지 60년이다.
 심리적 요인에 의해 병세가 좋아지는 현상을 ‘플라세보 효과’라고 한다. ‘플라세보’는 ‘즐겁게 하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예를 들어, 밀가루로 만든 ‘가짜 약’을 환자에게 주면서 ‘새로 개발된 좋은 약이에요.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한다. 그 말을 들은 환자는 ‘내 병이 이제야 낫겠구나,’ 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환자가 이 ‘가짜 약’을 먹으면 놀라운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실제로 병세가 좋아지는 것이다.
  플라세보 효과처럼 지난 설날에 우리 집에 오신 아버님과 가족들에게 김치를 내놓았더니 모두 맛있게 먹었다. 다만 내가 담그지 않은 김치라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적은 내 안에 있었다. 아무도 탓하지 않는데, 오히려 더 맛있게 더 잘 먹는데도 나만 안절부절못한 것이다. 내가 다 해야만 직성이 풀려서 그 바쁜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발버둥 쳤다. 나의 현재가 새로운 미래를 창조한다. 나의 미래는 과거의 관습과 습관에 얽매이지 않는 탄력적인 삶을 살 것이다. 나로부터의 해방이 필요하다. 갓(GOD) 증후군에서 벗어나는 것에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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