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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공주
  • 안산신문
  • 승인 2022.02.09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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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작가로 국문학자로 활동하는 한소진. 오래전부터 고대역사와 설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드라마 선덕여왕으로 진한 감동을 남겼다. 작가는 픽션이지만 역사적 진실을 담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을 소설화한 선덕여왕, 세종의 딸 정의공주,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성악가 윤심덕을 그린 사의 차미, 모두 역사 속 여성들의 삶을 그렸다. 역사소설이지만 읽다보면 허구가 아닌 사실을 얼마나 비중있게 다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정의공주. 세종대왕의 둘째딸로 태어나 한글창제의 조력자였다는 사실만으로 흥미로운 책이었다. 오랫동안 책꽂이에서 잠자고 있던 이 책을 이제야 꺼내들며 미안한 마음이 든다. 훈민정음, 세종이 비밀리에 한글을 창제한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유학자들은 성리학을 토대로 삼고 중국을 섬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한자를 사용하고 있는 것에도 불만이 없었다. 왕자들이 한글을 만들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집현전 노장들은 중국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다고 반발했다. 세종은 이런저런 이유를 염두에 두고 비밀리에 진행한 것이다. 세종은 백성들이 죄를 지었을 때 교화시키기 위한 쉬운 한글이 필요했다. 백성을 교화하지 못해 사건을 막지 못한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 생각하여 효행록, 삼강행실도를 거쳐 훈민정음을 창제하게 된다.
  이 책은 세종과 정의의 고뇌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낙천정은 가족들이 모여 토론하는 곳이기도 했다. 작가의 섬세한 표현으로 봄에서 겨울로 가는 낙천정이 눈앞에 그려지곤 했다. 낙천정은 가족의 의미와 화락의 날개를 펼치게 한 장소였다. 그러나 곱고 착하기만 한 정소언니가 마마로 홀연 세상을 떠나자 세종과 정의는 슬픔에 잠겨 있었다. 세종의 정소를 향한 마음은 통곡의 나날이었다. 큰딸 정소를 잃은 세종의 슬픔 속에서 비밀리에 한글을 창제하려는 세종의 노력이 깊이 파고든다. 마음(魔陰)이란 한자를 들여다보면 ‘악마의 음침한 기운’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마음만큼 괴상망측한 것도 없어 우리 조상들은 마음을 경계한다는 뜻에서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생각(生覺)이란 말도 순 우리말이지만 이두로 표현하면 ‘인간은 낳는 순간부터 깨달음을 얻는 존재’인 것이다. 정의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한자의 의미를 더해야 한다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다. 또한 정의는 이두는 한자보다도 어려워서 이두를 뛰어넘을 우리만의 새 문자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백성들의 삶을 편안케 하는 일이라고 세종에게 말한다. 하지만 임금은 외롭다. 조정에서는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누구도 새로 문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못해서다. 세종은 정의와 이두에 대해 대화하는 시간을 만들어놓았다. 정의는 비둘기가 ‘관관’울어야 하고 바람이 ‘산들산들’ 부는 것에 표현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정의는 모두에게 이두공주라 불릴 만큼 이두에 집착했다. 세종은 딸의 눈빛에서 백성들의 희망을 보았다. 이때쯤 정의의 혼담이 오가고 선왕이 아낀 무관 안망지의 아들 맹담과 혼례가 치러졌다. 하지만 맹담은 이미 마음에 둔 삼례라는 아이가 있어 맹담은 마음을 열지 못하고 정의는 마음에 고초를 겪는다. 이 책에 러브스토리가 있다면 맹담과 삼례의 이야기가 꽤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마음고생을 하는 정의의 이야기보다 아이를 넷씩이나 낳고 기르면서도 한글을 만드는데 열정을 쏟은 줄거리를 이어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정의는 저잣거리에서 백성들의 사투리가 다양하다는 점과 말소리엔 띄어 말하기가 있다는 점을 발견한다. 단군세기에 단군 가륵이 을보륵에게 명하여 지었다는 정음 서른여덟 자, 가림토 문자를 토대로 우리말은 천지인과 초, 중, 종성 세 음절로 확장되었다. 비밀리에 만든 한글은 10년 만에 완성되었다. “과인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 이 글자는 옛 글자를 모본으로 했으며, 초성, 중성, 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룰 수 있느니라. 한자에 관한 것, 우리말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백성들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한 글자, 훈민정음이라 한다.” 한글을 선포하는 묵직한 세종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한글이란 큰 글이란 뜻이다. 그럼에도 큰 글을 암클이라고 부른 것은 여성을 차별한 남성 중심 유교사상이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의공주는 꿈을 이루었으나 정사에 기록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한글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었다. 서민과 아녀자들에게 한글이 널리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죽산안씨대동보」에는 “우리말과 한자가 서로 통하지 못함을 딱하게 여겨 훈민정음을 만들었으나, 변음과 토착을 다 끝내지 못하여 여러 대군에게 풀게 하였으나 모두 풀지 못하였다. 드디어 공주에게 내려보내자 공주는 곧 풀어 바쳤다. 세종이 크게 칭찬하고 상으로 특별히 노비 수백을 하사하였다. 바로 세종의 둘째 딸 정의공주(貞懿公主)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훈민정음 창제에 한 획을 그었을 것으로 본다. 읽는 동안 정의공주가 한 송이 꽃으로 다가왔다.

홍혜향 (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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