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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기고]왕건과 견훤이 나눈 편지
  • 안산신문
  • 승인 2022.03.18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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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석<경기테크노파크 본부장>

우리는 중국의 삼국지나 초한지를 잘 안다. 이야기 거리가 풍부하다. 역사적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전쟁속에서 각 인물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전략과 전술의 다양함도 흥미롭다.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 제갈량에 대한 유비의 삼고초려, 조조가 대패한 적벽대전, 유방과 항우의 대회전, 항우의 마지막 순간인 사면초가, 유방이 한신을 제거하는 토사구팽 등등의 유명한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 오고 있다.
이러한 장면들은 하나하나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무언가 전해주는 메세지가 있음이다. 때로는 교훈이 되고 역지사지하게 한다. 반면교사도 있다. 스펙타클한 중원의 영웅들이 생생한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그래서 전쟁이지만 재미도 있고 지식도 된다. 삶의 지혜로?활용되기도 한다.?손자병법이 필독서인 이유이다. 개인과 사회생활에서 활용할 내용이 많다.
이렇게 유명한 장면들과 이야기 거리가 될만한 순간들을 우리 역사에서 한번 찾아본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공통으로 나오는 이야기이다. 왕건과 견훤에 관한 기록이다.
후백제 견훤은 무장으로 출중한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성정이 난폭하다고 알려 졌다. 그것은 신라에 쳐들어가 경애왕을 죽이고 경주를 유린했다는 과오에서 유래한다.? 당시 경애왕은 포석정에서 술과 안주를? 띄우며 유희중에 주지육림 정도는 아니지만 흥청망청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그런 견훤이 고려태조 왕건에게? 먼저 편지를 보낸다.
“~전략~ 전쟁이 그치지 않으며 족하(왕건을 지칭)께서는계책으로 침략하여 소란스러웠으나 아직도 내 말의 머리도 못보고 내 털 하나도 뽑지 못하였소. ~중략~ 이기고 질 것은 알만한 일이니 내가 바라는 일은 활을 평양 누각에 걸고 말에게 대동강 물을 먹이는 것이오. 그러니 신라를 돕지 말라”며 경고한다.
이에 왕건은 “~전략~ 나도 싸움을 하지 않는 무를 숭상하고 죽이지 않는 어짐을 기약하여 군사를 쉬게 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려는데 전갈의 독처럼 백성을 해치고 이리의 광기와 동탁의 간계와 흉악함이 걸, 주보다?더하고 어질지 못하니 하늘이?무너진 원통함이 극에 이르렀소. 견마지로하여 무기를 잡아 하늘이 부여한 천명을 다할 것이니 후회하지 마시오.(축약)”라는 답장을 927년?정월에 보낸다.
어쨓든 부하 신숭겸이 왕건의 옷을 입고 대신 죽는등의 우여곡절 끝에 승기는 왕건에게 기운다.
견훤은 아들들의 반란으로 왕건에 의탁하여 상보(왕의 스승)란 직함을 수여받고 말년을 보냈으나 흉악한 인간으로 역사에서 지탄받게?된다.
승자 고려 태조는 훌륭한 인품과 덕성으로 칭송받고 패자 견훤은 졸지에?몹쓸 사람이 되었다.
역사 기술은 이렇다. 대체로 승자 중심으로 쓰여지고 편집된다. 그러함에도 왕건과 견훤의 상쟁은 여러가지 흥미진진한 내용이 많다.
결코 삼국지나 초한지 보다 빈약한 내용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은 우리의 역사를 등한시 하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우리 역사가 관심사에서 멀어져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불확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사의 퇴보가 반복될 수록 우리 것을 소중하게 생각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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