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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안산신문
  • 승인 2022.06.09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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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창비)

 ‘이래도 되는 걸까’라고 생각하며 보내는 여덟 번째 4월이 지났다. 그렇게 가까이서 목격한 일을 한 해의 대부분 동안 잊고 지냈다는 반성을 또 한차례 반복했다. 그러면 안 된다는 듯, 기억해야 할 것은 너무나 많다는 듯이, 그때 이 책은 나에게로 왔다. 그렇게 세상에 나기도 전, 단 한 번 살아본 적도 없는 곳에서 있었던 일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될 5월이 오고 있었다.
  80년 5월, ‘너’는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된다. 매일같이 들어오는 시신들을 수습하며 초를 밝히던 ‘너’는 돌아오라는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는다. ‘너’가 왜 상무관에 오게 되었는지, 왜 ‘너’라고 불리는지는 나중에서야 밝혀진다. 죽음을 오롯이 목격하게 된 자의 죄책감은 육신이 사라지고 나서도 계속된다.  
  지금 정미 누나가 갑자기 대문을 열고 들어온다면 달려나가 무릎을 꿇을 텐데. 같이 도청 앞으로 가서 정대를 찾자고 할 텐데. 그러고도 네가 친구냐.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야. 정미 누나가 때리는 대로 얻어맞을 텐데. 얻어맞으면서 용서를 빌 텐데. (36쪽)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후회의 감정이다. 총에 맞은 친구를 구하지 못한 후회, 어린아이를 집에 보내지 못한 후회, 아들을 안전히 데려오지 못한 후회, 목격자로서 증언하지 못한 후회,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후회. 더 이상 후회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그들을 살게 하기도 하고, 죽음을 무릅쓰게 하기도 하는 힘이 된다. 하지만 후회를 근원적으로 끊어내는 방법은 영원히 알 수 없을 것만 같다. 왜냐면 애초에 후회는 그들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듯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57쪽)
  생존자가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며 울부짖는 동안에도, 작가가 ‘매일 벌받는 기분으로 책상에 앉아 고통 속에서 울면서’ 글을 쓰는 동안에도, 정작 총을 쏘라고 명령한 가해자는 한 번도 후회의 책임을 지지 않았다. 때문에 후회의 책임이 피해자들에게로, 작가에게로, 그리고 소설을 읽는 우리에게로 전가되어 왔다. 진실로 몰랐든, 모른 척을 했든, 읽는 이들은 삼백 그램 밖에 안되는 책을 몇 톤 이상의 후회로 가득 채울 수 있다. 기억하지 못한 자의 후회를.
  2017년 번역 출간된 이탈리아어판의 제목은 <인간의 행위>(Atti Humanii)이다. 이탈리아의 문학상 말라파르테 상 수상 소감에서 한강은 "존엄과 폭력이 공존하는 모든 장소, 모든 시대가 광주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실제로 인간의 잔학한 행위는 모든 역사의 순간에 반복되어왔으며, 슬프지만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책 속에서 증언자가 절규하던 질문에 대한 답들은 어쩌면 절망적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이고, 학살은 보편적인 경험이며,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은 아주 크나큰 착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 사실일지라도 그것만이 사실의 전부는 아니다. 몇십 년이 지났음에도 망자들의 혼이 우리에게 올 수 있도록 그들의 증언을 이야기로 써낸 작가가 존재하는 한, 뼈아픈 기억의 증언을 읽고 인간의 존엄과 본성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독자가 존재하는 한, 우리의 5월은 슬프지만 아름다울 것이다. 그렇게 매해 5월은 무구한 소년처럼 우리에게 올 것이다. 

김현숙 (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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