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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밤
  • 안산신문
  • 승인 2022.08.24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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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밤을 보내고 맞이하는 아침, 또 한 번 주어지는 희망이고 출발이다. 삶에서의 긴긴밤은 고통의 시간이고 깊어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문학동네 어린이 문학상 대상’을 받은 루리 작가의 ‘긴긴밤’은 코뿔소와 펭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여러모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사는 곳과 행동습성, 비슷한 부분이 전혀 없는 이들의 이야기가 읽을수록 빠져들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린이들에게 필독을 권하는 <어린 왕자>나 <꽃들에게 희망을>, 또 <마당을 나온 암탉>등은 어린이들이 좋아하고 많이 읽어서 베스트셀러가 된 게 아니고 어른들 눈높이에 그 책의 의미가 닿아서 일 것이다. <긴긴밤>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는다. 어린이 문학상으로 세상에 소개되었지만 이 책이 주는 메시지에 어른들이 감동하고 그 의미를 깊은 마음으로 받는다는 것이다.
  코뿔소 노든, 사람들의 욕심에 뿔이 잘리고 무참히 죽어간 아내와 딸, 동물원에서 만나 늘 함께하며 악몽에 시달릴 때마다 다정한 이야기로 평안히 단잠 들게 해주던 친구 앙가부까지 뿔사냥꾼들 손에 잃어버렸다. 이 책은 병든 노든의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시간을 이야기하며 그와 함께 했던 삶의 여정을 아기펭귄의 시각으로 풀어간다 
  노든은 세상에 마지막 남은 흰바위 코뿔소이다. 코끼리 고아원에서 어린시절 많은 코끼리들의 보살핌과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어엿한 코뿔소로 성장한 노든은 코끼리가 아닌 코뿔소의 정체성을 찾으려 익숙하고 안정된 그곳을 떠나 가족을 이루고 행복한 시간을 지낸다. 하지만 아내와 딸을 나쁜 인간들에 의해 잃고 혼자만 간신히 구조되어 동물원에 갇혀버린 노든, 들끓는 분노에 복수의 기회만 기다리고 있을 무렵 전쟁이 터지고 동물원을 탈출하며 우연히 만난 아빠펭귄 치쿠와 함께 길을 떠난다.
  이 책의 화자는 버려진 알에서 태어난 아기 펭귄이다. 알을 깨고 세상에 나왔을 때 처음으로 만난 존재는 펭귄 엄마아빠가 아닌 뭉뚝한 코를 지닌 코뿔소였다. 황량한 삶의 한 복판에서 코뿔소 노든은 아기펭귄을 책임져야 하는 현실에 서있다. 아내와 딸의 복수를 위해 살아 있는것에 의미를 두었던 노든이지만 오로지 알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몸무림 쳤던 아빠펭귄 치쿠의 부탁으로 기꺼이 보호자가 되어 바다를 향해 걷는다. 
  - 그날도 긴긴밤이 이어졌다. 노든과 치쿠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먼 곳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겨있던 치쿠가 노든에게 말했다. “혹시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알을 돌봐 주겠다고 약속해줘” 71쪽. -
  비록 버려진 알이었지만 치쿠와 윔보는 지극정성으로 알을 품고 돌본다. 전쟁으로 무너져버린 벽에 깔려 죽어가면서도 알을 보호했던 윔보와, 알을 지켜내기 위해 서둘러 알이 담긴 양동이를 입에 물고 떠나 수없는 긴긴밤을 견딘 치쿠였다. 어린 펭귄이 태어나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찾아 가기까지 펭귄아빠들의 헌신적인 돌봄과 코뿔소 아빠의 무한 애정이 있기에 가능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동물원에서 안락하게 살아가던 펭귄과 코뿔소가 천지를 뒤흔드는 전쟁통속에서 한 생명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 또 그들의 삶을 긴긴밤에 수없이 들으며 그들 몫까지 살아내야 한다는 의무를 받은 어린 펭귄. 비바람을 맞으며 온갖 위험을 헤치고 바다를 향해 걷는 코뿔소와 아기 펭귄 이야기이다. 
  걷고 걷는 삶의 여정 속에 둘이 함께 고통을 견디며 의지하고 긴긴밤을 통과했던 그들 중에는 꼭 하나씩 남겨진다. 펭귄 윔보와 치쿠중에는 치쿠만 남겨지고, 치쿠와 노든이 함께 하다가 노든만 남겨진다. 노든과 함께했던 어린 펭귄이 혼자 남겨져야 하는 두려움에 몸부림칠 때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남겨짐의 현실에 가슴이 젖었을 것이다.
  드디어 혼자의 힘으로 바다에 다다른 아기 펭귄이 자기를 지켜준 어른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다는 고백을 한다. 두려움도 있지만 자신이 살아갈 세상 앞에 당당히 우뚝 서는 아기펭귄을 눈물 어린 시선으로 응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린이 책으로 출간했지만 어른들이 더 큰 감동으로 집어드는 이유가 아닐지. 
  감동적인 책 내용과는 다르게 또 다른 느낌, 책장을 덮으며 어린이 책에서 조금 익숙지 않았던 것은 한 생명을 위한 헌신적인 모습에 일반적인 엄마, 아빠가 아닌 젊은 아빠들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연인이었던 두 아빠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게 그려지고 버려진 알을 품고 끝까지 희생하는 내용에 작가의 의도적인 메시지가 깊이 담겨있는 것 같아 한동안 어떤 생각으로 골똘하게 만들었다. 그 부분도 독자의 몫이라고 해야겠지.

최정인<작사가/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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