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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주택
  • 안산신문
  • 승인 2022.09.08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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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가족이 우리 앞집에 이사를 왔다. 이사 오던 그 날부터 이 집은 빌라 주차장에서 계단, 옥상까지 모든 공용공간에 자기네 짐을 여기저기 적치해두고 치울 생각을 하질 않는다. 공용공간에 개인의 짐을 적치해두면 소방법으로도, 안전상으로도 문제가 있으니 얼른 치워달라 이야기 해보았으나 이사 온 지 2달이 넘은 지금까지 짐들은 여전히 그 상태다. 불편한 이웃과의 동거는 무척 피곤한 일이다. 말을 해도 통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갈등을 유발하는 그 습관들 하나하나를 그들 스스로 고칠 리 만무하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건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더 신경을 쓰고 예민하게 굴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일이다. 계단에 널린 짐짝을 괜히 발로 툭툭 치고 다니는 나 자신을 가장 견디기가 어렵다. 
 ‘순례주택’을 가꾼 순례씨는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소방법에 위배되니 신고를 하라든가 물건 몇 개를 내다 버리고 모르는 척 하면 알아서 물건을 치울 거라는 등 지인들로부터 여러 솔루션을 들었지만 아무것도 내키지 않았다. 술수를 싫어하는 순례씨도 아마 저런 방법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겠지. 과연 술수를 쓰지 않고서도 상대를 변화시킬 수 있는 그런 솔루션이 있을까? 순례씨만의 해법을 찾고 싶어서 나는 여러 번 [순례주택]을 읽었다.
 서로 뜻이 맞지 않으면 할퀴고 물고 뜯기부터 먼저 하는 지금 우리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순례주택은 기이한 곳이다. 공용 공간에 자비를 들여 함께 먹을 커피니 라면 같은 것들을 무제한으로 채워 놓는 사람들이 모여 입주민들 전체가 문자 그대로 이웃사촌이 되어 어려운 일과 기쁜 일을 모두 공유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순례주택 밖에서는 자기 힘으로, 오롯하고 의젓하게 살아본 적 없는 인간들이 껍데기를 위선으로 잔뜩 치장하고 거들먹거리다 소리 없이 밀려온 인생의 파도에 떠밀려 모래처럼 무너지곤 하지만 순례주택 입주민들은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을 보여준다.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일은 무척 고단하고 바쁘고 까다로운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진짜 어른이기 때문이다.  
 16살 수림이를 키운 순례씨는 돌아가신 수림이 할아버지의 연인이었다. 수림이네 부모는 순례씨를 동거녀라 부르며 깔봤지만, 순례씨는 전 재산을 잃고 쫄딱 망한 수림이네 가족에게 자신 소유의 빌라를 빌려준다. 순례씨 낙하산 덕분에 남들은 들어가고 싶어서 몇 년씩 기다릴 정도의 싼 월세와 쾌적한 거주지를 얻었지만 수림이네 가족은 ‘고맙다’는 마음이 먼지 한 톨 만큼도 없었다. 오직 불평과 불만, 자기 힘으로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 특유의 어리광과 몰염치만 있을 뿐이다. 오히려 ‘내어줄 것이 있어서 고맙다’고 했던 건 순례씨다. 이쯤 되면 호구가 아닌가 싶지만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을 대하는 순례씨의 방식은 남다르다. 순례씨는 품격 있는 진짜 어른이기 때문이다. 
 “어떤 주민이 꽃 몇 송이 꺾어 간다고, 공원에 있는 꽃을 다 뽑아 버리면 되겠어? 꽃을 꺾지 말라고 안내해야지.”“안내해도 안 들으면?”“새로 심어야지 뭐.”(책 189쪽)
 새로 심고 안내도 했는데도 또 안 들으면? 또 새로 심어야지 뭐. 순례씨는 아마도 이렇게 대답했겠지. 아이는 못하고 어른만 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걸 수림이는 못하고 순례씨는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이 장면에서 나는 나 자신도 아직 어른이 못되었다는 걸 실감했다. 어른은 기다려준다. 아이가 자라기를, 아이가 배우기를, 배워서 혼자 일어설 수 있도록 안내하고 기다려준다. 여러 번 기다려주어 본 적이 있는 순례씨는 그래서 수림이네 가족의 철없는 때로 오만하고 무례한 행동에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다만 안내해주고 기다려주며 하루하루를 기뻐하고 감사해한다.  
 오늘도 퇴근 후 집으로 올라오면서 계단에 잔뜩 쌓인 앞집의 살림살이들을 보았다. 순례씨의 솔루션이 효과가 있는지 예전처럼 짜증이 일진 않았다. 더 이상 그 짐들을 발로 툭툭 치고 다니지도 않는다. 순례씨처럼 나도 해 볼 생각이다. 안내하고 기다려 주는 것. 안내해도 안 치우면? 또 안내해야지 뭐. 나도 오늘부턴 어른의 품격을, 매일 매일 사람으로 사는 게 고맙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보려니까.

정상미 (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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