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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
  • 안산신문
  • 승인 2022.11.23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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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원<동화작가>

달력 26일에 눈이 꽂힌다. 26일은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로 1년 중 아주 특별한 날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날은 과도한 소비로 인한 지구환경 파괴, 노동문제, 불공정한 거래 등 물질문명의 폐단을 알리는 날이다. 또한, 유행과 쇼핑에 중독된 현대인의 생활습관과 소비행태에 경종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날이다. 요약하면 인간과 지구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날이라 할 수 있다.
1992년 캐나다의 유명 광고인 테드 데이브(Ted Dave)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해마다 11월 마지막 주 토요일이다. 이 무렵부터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느라 본격적인 소비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11월과 12월에 상업적인 기념일이 빽빽하게 몰려있다. 빼빼로 데이, 칸쵸 데이, 무비 데이, 오렌지 데이, 머니 데이, 양말 데이, 크리스마스 등 머릿속이 어지러울 정도이다. 대기업마다 달콤한 유혹의 쇼핑 이벤트가 진행되고 이에 따른 과소비는 제품의 과잉생산, 배송량 증가, 나아가서는 탄소 배출량을 증가시켜 지구 곳곳을 멍들게 하고 있다.
사회와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로 유행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유행의 빠른 변화 속에 사람들은 새롭게 소비를 하게 되고, 이는 충동적 과소비로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 펜데믹도 이에 한몫 거들었다. 기약 없는 답답함과 부정적인 감정들을 소비를 통해 해결하려는 경향이 급속도로 증가한 것도 사실이다.
무분별한 과소비를 잠시 멈추고, 자신의 소비생활을 돌아보는 것은 자신과 지구를 위한 아주 중요한 일이다. 올바른 소비관을 갖는 것은 백번 강조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과 비슷한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가 있다. 불필요한 물건과 일을 줄여 생활을 단순하게 하면 오히려 삶이 더 풍요로워짐을 의미하는 생활 방식이다. 일본은 2011년 발생한 동일본 지진 때 해일에 휩쓸려가는 집과 물건을 보며 소유욕을 내려놓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수집문화를 선호하는 일본인에게 충격적 사건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건은 몇 개쯤 될까? 이 의문을 풀어주는 책에는 몽골은 300개, 일본은 6,000개, 그리고 독일은 10,000개쯤 된다고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과연 몇 개 정도가 필요할까? 우리나라도 일본과 독일에 뒤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행복의 조건을 정신적 보다는 물질적 부를 성공한 삶이라 여겨왔던 게 사실이다. 그런 삶을 위해 쉼 없이 내달려온 우리네 인생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도 채움보다는 비움으로 점차 변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부유한 나라가 지구 생태계 파괴에 앞장서고 있다. 부유한 나라의 자원 과소비로 가난한 나라의 생태계가 파괴되고, 나아가서는 지구 전체의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는 지적에 유의해야 한다. 스페인 환경과학기술 연구소의 논문이 무섭게 이를 증명하고 있다. 연구소는 국가별 초과 자원 사용량에 대해서 자세한 분석을 내놓았다. 1970년∼2017년 동안의 세계 여러 나라의 자원소비 분석이었다. 우리나라도 자원의 과소비로 지구 생태계에 부담을 주는 나라로 지적됐고, 특히 국민 1인당으로 따졌을 때는 생태계 훼손 책임이 세계 상위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27%, 중국 15%, 우리나라는 2%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1인당 초과 사용량이 그동안 10톤이 넘는 결과까지 나왔다. 이 논문은 불필요한 과소비로 인해 온실가스 배출은 물론 이에 따른 기후변화뿐만 아니라 토지 이용 변화, 생물 다양성 손실, 화학물질 오염 등으로 지구를 쉬지 않고 병들게 하고 있다고 냉철한 분석을 내리고 있다. 암울한 지구의 미래에 대한 경고이다.
이제 한 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의 아름다운 유혹에 빠져 보자.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에 더 치중해 보자. 물질적인 부를 내려놓고 정신적인 부로 생각을 바꾸어 나가자. 이러한 것들이 병들어가는 지구를 살리는 징검돌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소크라테스의 말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행복의 비결은 더 많은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더 적은 것으로 즐길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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