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일은 어렵다. 단어를 골라 문장을 만들고 그 문장에 자기 생각을 담아야 한다. 때로 삶의 가치나 철학적인 내용까지 담아내야 할 때는 한 문장 쓰는 것도 엄청난 고뇌의 연속이리라. 작가는 언어의 마술사라고 한다. 그만큼 언어로 감동과 재미를 주니 말이다. 하지만 언어의 마술사가 되기까지 얼마나 치열하게 문장과 싸웠을까? 
 독서 모임에서 우연한 기회에 글쓰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재미있었다. 나름대로 인정도 받았다. 그런데 요즘 글 쓰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 왜일까. 가볍게 시작한 글쓰기가 이젠 가볍지만은 않다. 한 문장 쓰는 것도 아니 문장 안에 들어갈 단어나 조사 고르는 일조차 고민할 때가 많다.
 역시 글쓰기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절망감에 빠져있을 무렵 최인호의 <문장의 무게>를 만났다.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매력적인 부제목이 시선을 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철학 에세이다. 자칫하면 식상할 수도 있는 내용을 저자의 독특한 시선과 감성으로 재치 있게 풀어 놓아 지루하기는커녕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진다. 카프카를 시작으로 밀란 쿤데라, 톨스토이, 헤밍웨이 그리고 사르트르 등 27명의 고전 작가들을 소개해 놓았다. 가벼운 말들이 먼지처럼 떠도는 세상, 고전에서 만난 문장의 무게감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질문으로 다가온다. 
 저자는 서두에서 문장이 주는 무게는 여백이 있기 때문이며 그것은 어떤 미인의 유혹보다 강하다고 말한다. 무게가 주는 여백이라…. 저자의 말처럼 가벼움이 가득 찬 말들보다는 한 줄의 문장이 갖는 힘, 그 무게감을 생각해 보면 어떤 문장은 삶을 바꿀 수도 있다.
 프란츠 카프카는 <일기>에서 "내가 이룩해 놓은 것은 고독뿐이다"고 말했다. 이 문장에는 역설이 숨어있다. 카프카는 진정 고독을 즐기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카프카는 고독했다. 지금의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 밀란 쿤데라. 20대에 열광했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나오는 한 구절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이미 기억에 없는 문장인데 여기서 이렇게 보니 반가울 수밖에 없다. 밀란 쿤데라는 육체의 욕망을 아름다운 예술로 풀어놓았다. 
 "만약에 당신이 육체의 욕망에 전적으로 복종할 필요를 느껴보지 못했다면 다시 말해 격정에 휘말려 본 적이 없다면 당신의 삶 속에서 아무것도 체험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문장이 주는 무게는 무엇일까? 시대가 주는 억압의 무게, 지식인의 고뇌를 한방에 무너뜨리는 것은 사랑이다. 그것도 육체적 즐거움이 따라오는 사랑. 어쩌면 삶을 한없이 가볍게 만들어 버릴지도 모른다. 동시에 시대가 주는 삶의 무게에서 우리를 가볍게 해 줄 수도 있다.
 "삶의 가장 큰 재앙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리라. 사랑이 비록 육체적이고 사악해 보일지라도 언제나 그것은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고 있지 않은가? 그녀의 떨리는 숨결보다 아름다운 운율은 없으리라"(33P)
 저자는 쿤데라의 문장을 이렇게 평가해 놓았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이 책이 주는 매력 중의 하나는 내가 잘 모르는 작가와 책을 찾아보게도 한다는 점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사무엘 베케트의 작품은 노벨상을 받은 작품인데 어디선가 들어보기만 했을 뿐 내용을 전혀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이 문장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찾아서 읽어 보았다
 "이 엄청나 혼돈 속에서 분명한 건 딱 하나야.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이 한 문장이 나의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고도를 기다리는 게 과연 무엇일까?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걸 안다 해도 기다림은 계속 되어야 한다. 언제까지? 이런 의문을 가지게 한 책. 고도를 기다리며는 정말 재미없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엄청난 매력이 있다. 자꾸 곱씹어 보게 한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무엇을 기다릴 것인가? 과연 기다릴 수는 있는가? 
 <문장이 주는 무게>를 읽으면서 역시 글쓰기는 어렵다는 걸 또 한 번 느끼게 됐지만 그래도 한 편으로는 가벼워졌다. 좋은 문장을 쓰려고 너무 애쓰지 말자는 것이다. 좋은 문장은 고전에 다 있다. 우리는 그것을 찾아 읽고 사유하면서 자유롭게 글을 쓰면 된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 최인호는 우리가 익히 아는 작가 최인호가 아니다. 처음엔 이름 때문에 이 책을 집어 든 건 사실이다. 저자는 메가스터디에서 수능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몹시 메마른 수능 국어를 가르치면서 이렇게 철학적이고 촉촉한 에세이를 쓴 저자의 능력이 부럽다.

전인숙 (혜윰서평단)

안산신문  ansansm.co.kr

<저작권자 © 안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