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제도 없고, 완치도 요원한 전염병이 창궐했던 2020년. 팬데믹의 대혼란 속에 나는 난데없이 갑상선 항진증이라는 병까지 얻었다. 항진증 증상이 주는 괴로움과 사회적 격리에 함께 시달리는 동안 나는 나도 모르게 물리적으로도, 마음으로도 모두에게 거리두기를 하고야 말았다. 결코 내가 원해서, 정말로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소설 [2미터 48시간]의 주인공인 정음이가 그랬던 것처럼.
  소설 [2미터 48시간]은 갑상선 항진증에 걸린 중학생 정음이가 18살이 되기까지 보낸 외로운 투병기를 그린 작품이다.
  과부 마음은 과부만 안다고, 겪어본 사람만큼 같은 상황에 깊이 공감하고 동감하는 사람은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경험은 늘어가고 겪는 일이 많아지니 어쩌면 인생은 공감의 지경을 넓혀가는 여정인가 한다. 그러나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의 경험만이 전부라고, 내 생각만이 진리라고 옳다고 여기는 고집도 함께 깊어지는 것은 무슨 조화인지. 그래서 [2미터 48시간]의 저자 유은실 작가는 ‘타인의 고통을 단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의 세상에 이 책을 선사했다. 20년이 넘게 갑상선 항진증 환자로 살고 있는 저자는 청소년 환자의 일상을 통해 병자나 환자가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와 입장에 있는지, 투병 중이라는 현실이 사람을 어떻게 고립시키는지를 그렸다. 
  초등학생 정음이는 암환자인 선우와 짝이었다. 선우는 암의 병증으로 머리숱이 적어 놀림을 받으면서도 의연했다. 정음이가 갑상선 환자가 된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 정음이는 선우를 떠올리며 그처럼 꿋꿋한 신념을 가지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말 뿐인 친구들 사이에서 정음이는 왕따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엄마는 정음이를 건강한 아이인 것처럼 배려 없이 대하고 아빠는 문자만 주고받을 뿐이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청소년 환자인 정음이가 마음으로 의지할 사람이 없었다. 그런 정음이를 이해한 건 딱 한 사람, 같은 반 인애였다. 둘은 친하기는커녕 서로 인사를 나누지도 않던 사이였다. 그러나 인애는 할머니가 혼자 병원에 다녀오시다가 큰일을 당하신 경험이 있기에 방사선 치료를 혼자 받으러 가는 정음이를 그대로 둘 수 없었다. 그래서 방사선 요오드를 먹고 나온 정음을, 인애는 극진히 배려한다. 교실 안에서 몸의 거리는 모두와 멀었지만 같은 아픔을 겪는 같은 처지의 정음과 인애 사이 마음의 거리는 0미터. 
  인애가 정음의 마음을 위로했다면 정음의 할머니는 정음의 마음을 녹였다. 갑상선 치료를 위하여 방사선 요오드를 먹은 이후, 정음이는 온전히 홀로 이틀의 시간을 격리된 채로 보내야 한다. 자칫 주변인이 방사선 피폭을 당할 수도 있기 정음이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입히지 않기 위해 그리고 외롭고 고독해서 자꾸만 심통이 나는 자기 자신을 이기기 위하여 홀로 고군분투한다. 병원에 입원 중이었던 정음의 할머니는 그런 손녀가 너무나 안쓰러웠다. 본인의 몸도 가누기 힘든 동안 할머니는 손녀가 겪는 일들을 더 마음 아파했다. 어쩔 수 없이 누구도 만나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하고 이틀을 보내야 하는 정음을, 그래서 잔뜩 화가 나서 주변 누구에게든 비수를 날리고 싶은 정음의 마음을 할머니는 따듯하게 품어 안았다.
  사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고, 아파 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는 위로에 내 가슴도 쿵 내려앉았다. 정음이가 아니라 상미에게, 20년여 항진증 환자인 저자가 1년차 항진증 환자인 독자에게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왔다. 그저 시간이 쌓인다고, 시간이 쌓인 만큼 경험의 폭이 넓어진다고 해서 공감의 폭까지 저절로 함께 넓어지지 않는다. 경험이라는 강물 밑바닥에 침전해 있는 고통을 이해할 때 비로소 공감대의 확장 즉,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이 병의 고통을 아는 작가가 이 병을 앓고 있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깊이 공감하고, 그렇게 공감해주는 누군가를 느끼는 것만으로 마음은 마치 백신을 맞은 듯 든든해진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아직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의 말대로 완벽한 전염병 완치는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완벽한 완치가 아니면 어떤가. 완벽한 인간도, 완벽한 가족도 없다는 정음이의 말처럼 세상은 불완전하다. 우리는 누구나 조금씩 병자이고 환자이다. 그래서 우리는 ‘남 같지 않은’마음을 누구나 가질 수 있다. 누구라도 누구에게든 아파 본 사람만이 아는 심정으로 공감할 수 있다. 내가 언젠가 느꼈던 혹은 언젠가 짊어져야 할 고통을 당하고 있는 타인에게 ‘사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는 진심을 내민다면 단지 그것만으로도 세상의 많은 것들이 변할 수 있지 않을까?

정상미 (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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