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주 창작동화

  함께했던 시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있다.
  반장 박채린은 학교도 안 간 일요일 밤, 심각한 얼굴의 엄마에게서 같은 반 부반장 기소영의 교통사고 소식을 듣게 된다. 친한 친구가 죽었다면 당연히 슬퍼서 눈물이 철철 흐를 줄 알았는데, 소영이가 죽었다는 이 상황이 마냥 슬프지가 않고 당황스럽고 낯설어 조금 혼란스럽다. 
  다음날, 엄마가 꽃집에 미리 연락해서 준비해 준 국화 꽃다발을 찾아들고 등교하면서도, 혼란스러움은 여전하다. 자신의 감정도 불편한데 저마다 다른 친구들의 반응과, 조례시간에는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다가, 수업시간에는 소영이의 죽음에 동요되면 안 된다고 하고, 마침내 종례시간엔 우리가 할 일은 일상을 착실히 지키는 거라고 말씀하시는 담임 선생님의 반응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장례식에 가지 않는 것으로 어른들이 마음대로 결정해 버리고, 반에서는 소영이의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도 금기시 되는 분위기다. 이제 반에서 소영이의 흔적을 찾기란 힘들다. 어느 틈에 책상과 사물함도 사라졌다. 게시판에 남아 있던 소영이의 그림도 사라졌다. 떼어 내는 걸 본 사람은 없지만, 모두 선생님이 그랬을 거라 짐작했다. 소영이의 흔적이 사라지는 과정은 낮이 지나면 밤이 오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62쪽) 그렇게 모든 게 조용히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채린이 우연히 정류장에서 버스를 지나쳐 보내는 연화를 만나게 되는 것을 계기로, 그동안 소영이만 알고 있던 미스터리 소녀 연화의 비밀을 알게 된다. 그렇게 소영이에 대한 저마다의 추억을 안고 있는 ‘기소영 그룹’의 채린· 영진· 연화· 나리는 소영이와 친구들과의 또 다른 우정과 맞닥뜨리며 친구의 49재를 해주기로 마음을 모은다. 
  우리는 제각기 살아온 경험이 다르고 성격도 다른 만큼, 어른들조차도 아픔을 받아들이는 방법이나 강도가 다르다. 그러니 사람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도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나처럼 일찍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어릴 때부터 가까이에서 죽음을 경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같을 수는 없다. 게다가 어린 친구들은 또 다르지 않을까? 
  아무도 경험할 수 없는 일이기에 두려울 수밖에 없는 죽음을 다룬 내용들이, 최근에 조심스럽게 책으로 출간되고 있다. 우리는 4·16참사와 10·29참사를 겪으면서 아이들도 얼마나 죽음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살아가면서 소소한 이별을 수없이 겪으면서도 적응이 어렵듯이, 누구나 마지막에는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마냥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12월 달력이 달랑 한 장 남았을 때, 송년회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문득 했었다. 그러던 차에 어느 청년 단체의 송년회에 초대되어, 색다른 경험을 하며 영화 ‘아바타: 물의 길’을 관람하고 왔다. 가족이란 무엇이며, 우리가 어떤 식으로 안전하게 그들을 지키며 사람답게 살아가는가? 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였다. 한 해를 보내며 되돌아보는 길목에 참 알맞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서 알찬 송년회를 보낸 느낌이 들게 했다. 
  이 책 ≪기소영의 친구들≫ 속 아이들은 갑작스럽게 맞게 된 친구의 죽음 앞에서, 혼란스러워하면서도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들만의 방법으로 추억하고 애도한다. 
  저마다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은 다르겠지만, 아이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친구를 보내는 것을 보면서 그저 죽음을 쉬쉬하거나 잊히게 하려고 애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그것을 감추려고만 급급할 게 아니라, 때로는 드러내어 충분히 슬퍼하고 보내 주면서 가족들과 자연스레 이별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창작동화라 아이들에게 눈높이가 맞추어져 있지만, 평소에 꺼내기 힘든 이야기이기에 ≪기소영의 친구들≫을 가족들이 함께 읽으며 이별과 죽음에 대해 자연스레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새해가 시작된 시점에 죽음을 두고 이야기한다는 게 다소 낯설 게 다가올 수도 있겠으나, 죽음과 이별은 경우만 다를 뿐, 누구에게나 반드시 찾아올 것이므로.

민복숙 (혜윰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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