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아, 창비

 ‘진정한 해방은 죽음으로부터’
 빨치산 출신 부모를 둔 정지아 작가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버지의 해방일지] 소설을 발표했다. 살아생전에는 한 번도 아버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아니 하지 않았던 작가는 이번 소설을 아버지에 대한 반성문, 그것도 잘났다고 뻗대며 살아온 것에 대한 통렬한 반성문이라고 표현했다. 
 작가는 32년 전, 1990년에 [빨치산의 딸]를 발표했다. 말이 소설이지 그야말로 부모님 두 분의 투쟁 역사서를 썼다. 물론 그 당시에는 소설이 나오자마자 금서로 지정됐고 출판업자는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됐다. 그런데 이번 자전적 소설은 전작과는 결이 상당히 다르다. 사회주의자로 평생을 올곧이 살아온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3일간의 장례식에서 만난 아버지의 인연을 통해, 작가는 아버지의 삶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그렇다고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눈물 없이도 충분히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작가의 능력이다.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만우절은 아니었다. (중략) 한 걸음 한 걸음 쌓여 인류의 역사를 바꾼다는 진지한 마음으로 아버지는 진지하게 발을 내디뎠을 것이다. 다만, 거기 전봇대가 서 있었을 뿐이다. 무심코, 하필이면 거기, 이런 젠장” (16쪽)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아리’이다. 아리의 아버지 고상욱은 구례라는 작은 도시에서 그야말로 호구 중의 호구였다. 그는 막차를 놓쳐 길에 앉아 있는 방물장수를 데려와 아무 조건 없이 재워준다. 또 모내기하다 말고 지인의 부탁으로 교통사고 현장에 가서 119대원도 손대지 못할 정도로 엉망이 된 시신을, 빨치산 동료의 시신 수습한 경험으로 능숙하게 해 준다. 심지어 동네 처녀 암내 수술을 위해 병원도 알아봐 주고 동네 사람들의 관공서 일도 대신 봐준다. 그야말로 동네 머슴을 자청한다. 속 터지는 어머니가 뭐라 할라치면 아버지는 말한다 ‘유물론이 뭐여, 민중이 뭐여, 그깟 돈이 뭐여, 그게 중한디 민중이 중하지’라고 일갈해 버리며 어머니는 말문이 막힌다. 그놈의 유물론 그놈의 민중.
 하지만 사회주의자이며 혁명가인 아버지는 의외의 반전은 바로 노동을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이다. 얼어 죽고 굶어 죽고 총 맞아 죽는다는 전직 빨치산인 아버지는 고작 두어 시간 고추밭의 김을 매는 것을 참지 못한다. 노동자와 농민을 해방시킨다는 아버지가 노동을 힘들어한다는 역설적 상황에서 우리는 유머를 본다. 작가는 이렇게 곳곳에 유머를 배치해 놓았다. 우리가 너무 진지하게 이 책을 읽지 않도록 말이다.
 “아버지는 유물론자답게 죽음 뒤를 믿지 않았다. (중략) 우리 죽으면 싹다 꼬실라부러라 (중략) 그럼 제사는? 지사는 무슨 지사 아버지는 뼛속까지 유물론자였다. 역시 유물론은 산뜻해서 좋았다.” (94쪽)
 모든 게 담담하고 냉철한 아버지도 단 한 가지 어쩌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작은아버지이다. 작은아버지는 아버지의 사촌 동생이다. 어린 시절 형을 자랑스러워하던 작은아버지의 단 한 번의 실수로 자신의 아버지까지 총살을 당하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그는 충격으로 함구증을 앓고 절망감으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작은아버지는 술만 의지하며 살다가 툭하면 형을 찾아와 시비를 걸고 욕설을 내뱉었다. 아버지는 고스란히 당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민중이 중요해서 가족을 버려야 했고 민중의 해방을 위해 목숨 걸고 싸웠지만 아버지는 가족의 굴레에서는 끝끝내 해방되지 못했다. 
 아리는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화장을 했다. 그리고 구례 곳곳에 아버지 다녔던 길에 조금씩 뿌린다. 아들 같은 빨치산 동료 김학수와 아버지와 담배를 나눠 피던 베트남 다문화 아이와 함께. 드디어 아버지는 해방이 되었다. 민중으로부터 노동으로부터 그놈의 유물론으로부터. 아버지가 매일 하시던 말씀은 이거였다 ‘사램이 오죽하면 글것냐’ 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살면 세상이 살만하다. 화가 사그라진다. 모두 이해된다. 사람이 오죽하면, 오죽하면.

전인숙 서평가 (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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