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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랫동안 걷기
  • 안산신문
  • 승인 2023.05.17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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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소설가>

감기에 걸렸다. 목이 아프고 기침이 나고 두통에 코까지 간질거렸다. 첫날은 코가 막히더니 다음날은 목이 따끔거리고 두통까지 겹치니 견딜 수가 없었다. 통화를 하니 말이 나오지 않아 대화가 될 수 없었다. 병원에 갈 기운조차 없었지만, 코로나에 걸렸을 것 같은 불안감에 병원에서 검사받고 약을 타왔다. 감기는 금방 좋아졌지만 목소리는 아주 천천히 돌아왔다.

정부에서는 거의 3년 만에 마스크를 벗고 일상생활을 해도 된다고 했다. 마스크를 안 쓰면 불안하다.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났는데 인사를 하면서 서로 손으로 입을 가렸다. 가방에서 얼른 마스크를 꺼내면서 이 상황이 난감했다.

친구가 연락이 왔다. 3년이라는 시간도 견뎠으니 이제 순례길을 떠나도 되지 않을까 했다. 여전히 꿈의 거리다. 그 먼 길을 이 체력이 버틸지 모르겠다며 자꾸 주저한다.

10여 년 전부터 친구와 제주 올레길을 걸었다. 아름다운 제주의 산과 들, 바닷길을 느리게 느리게 걸었다. 한 번에 올레길 전체를 다 걷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몇 번에 걸쳐 제주 올레길을 다 걸었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었다. 올레길과 달리 산티아고 순례길은 한 달 이상이나 걸어야 하니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출발 계획을 못 잡으니 어쩌면 버킷리스트로만 남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선조들은 옛날에 한양을 가려면 말을 타거나 걸어서 갔다. 한 달씩 걸려서 걸어가며 비가 오면 비를 피하고 길을 가다가 바쁜 일손을 만나면 도와주면서 쉬엄쉬엄 걸어서 갔다.

조선시대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를 보면 한양에서 열하까지 걸어서 갔는데, 무려 69일이나 걸렸다. 지금은 비행기로 4시간이면 가는 거리다. 박지원 일행은 하루에 강을 9번이나 건너기도 하고, 말을 타고 양쪽에서 노비가 손을 잡고 자면서도 갔다. 그렇게 어렵게 중국의 연경에 도착하니 황제는 피서지인 열하에 가고 없었다. 조선의 사신단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황제가 열하로 오라는 급보를 보냈다. 이번엔 열하까지 목숨을 걸고 무박 4일 만에 간다. 그것은 목숨을 걸고 가는 길이었다.

더위에 지치고 잠이 모자라가면서 조선 사신단은 오로지 걸어서 업무를 수행했다. 걸어서 가는 길은 장애도 많고 속도도 느렸다. 청나라 황제 건륭제의 칠순 잔치에 맞춰 가려고 노심초사 걸음을 빨리했다. 그런 가운데 박지원은 주변의 풍물도 보고 수많은 사람과 사귀면서 매사를 긍정적으로 대했다. 지금은 열하까지 2박 3일이면 관광이 완료된다. 두 달의 시간을 3일로 줄여 주는데도 우리는 늘 시간이 부족하다.

산티아고도 대략 69일 정도의 일정이 필요하다. 박지원의 사신단 일행처럼 오로지 걸어서만 이동하는 길.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도전하고 있다. 나도 더 늙기 전에 이 엄청난 모험을 시작할 수 있을까. 산티아고에서 매주 에세이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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