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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다
  • 안산신문
  • 승인 2023.06.21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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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소설가>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는 어느 날, 이게 맞나? 미친 게 아닌가? 하는 자조적인 자각이 들 때가 있다. 일과가 정신없이 바쁜데 정작 필요한 일은 놓치고 만다. ‘살다 보면 그렇지’ 하며 스스로 변명하고 넘어간다. 안빈낙도가 내가 지향하는 바인데 실은 그건 단어로만 나불거릴 뿐, 실제 행동은 욕심이 더덕더덕 묻어있다. 이 이율배반적인 삶. 내가 만들어가는 내 삶이 맞는 걸까?
 그러나 우리를 앞서 살다 간 선배들도 모두 이런 삶의 질문을 하며 나름의 세계를 구축하였다. 책을 통해서 현명해지는 사람, 생활을 통해서 현명해지는 사람 중에 나는 전자에 속한다. 그냥 책을 통해 세상을 배운다고나 할까. 물론 살면서 깨닫는 바도 많지만, 책이 주는 지혜와 양식은 더 많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는 현대인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다 간다. 조르바는 일생을 책에서 세상을 배우는 것이 아닌 몸으로 체득하는 삶을 살았다. 그의 삶은 소설에서 화자인 ‘나’와 작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지향하는 세계일 것이지만.
 생각 또는 관념이 우리를 얽어맨다. 조르바는 종교의 교리, 행위 양식, 물질과 제도와 국가에 대해 자유로웠다. 물질의 결핍이 자유를 구속한다. 조르바는 물질을 구하는 일을 망설이지 않는다. 물질에 대해서는 동물적 능력을 갖췄다. 필요한 돈을 얻기 위해 사기 쳐서 갈탄을 팔기도 하지만 부를 축적하지 않는다.
 조르바는 사회제도에 대해서 자유롭기 위해 결혼을 안 한다. 물론 여러 명의 여자와 결혼하지만 오래가지 않고 이혼한다. 사회시스템에 들어가면 묶이기 때문에 결혼을 근심 걱정을 짊어지는 것이라 여긴다. 그러나 그가 현재 만나는 여자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대했다.
 조르바는 이념에 대해서도 국가를 초월하고 해방된다. 이십 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 중인 시점에 민족주의가 전 세계를 덮고 있었다. 조국이 있는 한 인간이 부당한 제도의 구속에 자유로울 수 없다. 지식인의 책무, 시대의 부름에 응해야 하는 사명감을 버리는 자유. 조르바는 국가주의를 초월하고 세계시민으로 한 인간의 자유와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우리는 제도, 국가, 이념 등 어딘가에 속해 있다. 인간으로서는 똑같은데, 내가 속해 있는 국가에 우리의 삶이 정해진다. 조국에서 해방될 수 없다.
 나는 많은 강박에 갇혀 산다. 어릴 때 친척들이 집이 지저분하다는 소리를 듣고 자라 청소에 대한 강박감이 생겼다. 그래서 세균 하나도 생길까 구석구석 청소하고, 몇 번씩 씻고 틈에 든 먼지도 이쑤시개로 긁어낸다. 그러면서 나보다 더 위생에 집착하는 여동생을 비난한다. 동생네 아이들이나, 우리 아이들이 위생에 집착하는 것을 보면 적당히라는 것을 모르는 내 삶이 반성 된다.
 또 “음식을 너무 조금 먹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나는 밤에 엄청 많이 먹는다”라고. 조금 먹으면서 조금 먹는다는 말을 듣기 싫어한다. 식사량에 비해 내 몸이 살찐 것에 대한 강박이다.
 나의 삶이 어떤 것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 불가능하지만 살 수 있다면 조르바처럼 살고 싶다. 원하는 것이 없는 상태가 자유다. 그러나 나는 근심도 많고 해야 할 일이 아직 많고, 오늘도 무척 바쁘다. 조르바는 조르바일 뿐이고, 나는 오늘도 나의 삶을 산다. 미친 것처럼 바쁘게. 나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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