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문학동네)

섬진강에 살지 않는다. 시를 쓰지 않는다. 나는 섬진강 시인이 아니므로. 하지만 시인과의 공통점이 있다면 시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이랄까. 김용택 시인은 시는 기다리지 않지만 비의 기별은 기다린다고 하였다. 그는 생활 시인 그 자체이다. 방점은 시인에 있지 않고 생활에 있다. 일흔을 넘어서도 오늘의 날씨가 더 궁금하고 그 궁금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글에 담겨 시가 된다. 그렇게 시는 그의 또 다른 시집 제목처럼 그에게로 왔다. 김용택 시인은 시를 살고 있다. 아마도 늘 곁에 있기 때문에 시를 기다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방바닥에/ 떨어진 꽃잎을/ 주우며 생각한다/ 누구나 다 견디지 못할 / 삶의 무게가 있다고/ 삶에는 예외가 없다고 그러나/ 어제보다 조금 더/ 날아간 꽃잎도 있다고(‘조금 더 간 생각’ 전문)
특별할 것 없는 단어들의 조합이 이상한 무게를 갖는다. 꽃잎처럼 가벼운 말일진대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묵직한 시가 되었다. 꽃잎(말)에는 생각이 담겨 있고, 그 생각에는 삶의 무게가 실려 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생각의 무게는 조금 가벼워진다. 꽃잎은 조금 더 날아 갈 수 있게 된다. 발문에서 오은 시인은 “(김용택) 시인은 안다고 생각했으나 몰랐던 장면, 알아서 모르는 척했던 풍경, 알 듯 모를 듯한 수수께끼를 사방에서 줍고 다닌다. 줍는 일은 허리를 숙이는 일, 몸을 낮추는 일, 겸허해지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김용택 시인은 꽃잎이 멀리 날아가길 바라지 않는다. 조금 더 날아가길 원할 뿐이다. 시인은 벌써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은데도 아직도 많이 모르고, 아직도 더 많이 알고 싶단다.
우리는 이렇게 살다 죽고 오랜 세월이 흐르고/ 그때도 새들은 날고 나뭇가지들은 바람에 흔들릴 텐데/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뒤돌아보며 슬퍼하지요/ 슬픔으로 아름다움을 설명할 수 있는 별들의 표정을 나는 알아요(슬픔으로 아름다움을 설명할 수 있는 별들의 표정을 나는 알아요 부분)
세상은 슬픔과 기쁨이 섞여 있고, 탄생에는 아픔이, 소멸에는 희망이 함께 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라 권한다. 슬픔은 지켜야만 하는 존재다. 그렇게 지켜낸 슬픔으로 아름다움을 설명해야 한다. 인간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아름다움이고, 그것은 곧 사랑이다. 그의 시가 곱고 아름다운 이유다. 우리는 그의 시집을 읽으며 우리에게 아름다움이 얼마나 모자른지 깨닫고,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는지 배울 수 있다. 시인의 말대로 늘 보던 나무들이 새롭게 보이면 그게 사랑이다. 김용택이 그리는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하다.
시집 제목 <모두가 첫날처럼>은 인생에 발견이 넘치는 어린아이의 시선 같다. ‘모두’는 두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모두가 ‘매일’의 의미라면 자신의 인생이 언제나 새로웠으면 한다는 개인적이고 지속적인 바람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무리 매일이 똑같고 시간이 쏜살같다 하더라도 오늘은 여전히 처음인 오늘이라고 되뇐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작지만 큰 발견들이 있길 기대하면서. 한편 모두가 ‘누구나’의 의미라면 모든 사람의 오늘이 새롭길 바란다는 사회적이고 동시대적인 바람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인 자신의 오늘만이 아니라 독자의 오늘에도 설렘이 있기를 기도해 주는 제목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시인이 바라보는 세상의 온기가 전해져온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새들에게, 구름을 데리고 가는 바람에게 모욕을 주는 시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시인은 발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시는 모욕(侮辱)은커녕 송찬(頌讚)이다. 세상도, 새들도, 바람도 뿌듯해할 것이다. 기다리고만 있기에는 시가 너무 멀리 있어서 찾아 나서야 하는 우리의 삶에 그의 시가 와주었으면 좋겠다. 섬진강에 살지 않아도, 시를 쓰지 않아도 그처럼 시를 살고 싶다.

김현숙<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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