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추천받았다. 표지에 등을 돌리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만으론 어떤 슬픔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오십 대에 들어서면서 울컥 슬픔이 몰려온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슬픔에 위로가 되었을까. 내 심장은 타인의 슬픔을 위해 뛰고 있는가 물음이 슬프다. 다른 사람의 슬픔을 이해하기 위해선 슬픔을 공부해야 한다. 그동안 슬픈 공부는 하지 않았다. 나는 슬픔을 참는 사람인가. 울음을 참는 사람은 눈물 대신 울음을 삼키므로 울음이 쌓여서 성대가 커다랗다고 한다. 잘 웃는 사람은 슬픔이 없는 사람일까. 슬픔보다는 웃음의 메뉴를 선택해서일 게다.
  저자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들 중 하나는 자기 자신이 슬픔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슬픔이라고 말한다. (78쪽) 그렇다고 슬픔을 잊어버린 슬픔에게 넌 슬픔이야, 라고 말해주는 것도 위험한 일이라고 말한다. (80쪽) 코르크 마개로 막듯이 울음을 막는 사람. 늘 참아서 슬픔을 도무지 모를 것 같은 사람. 듣지 않았으므로 참는 사람이라는 것을 모른다. 슬픔을 들어주는 사람은 그 사람이 참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속으로 운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코르크 마개를 열어주자. 슬픔을 열고 들어가 보면 참았던 울음들이 울컥울컥 쏟아져 나올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2010년 이후에 발표한 짧은 글들을 모았다. 뒤쪽엔 ‘책속의 책’을 소개하고 있어서 읽고 싶은 책이 많아진다. 소개하는 책마다 짧고 독창적인 생각이 들어 있다. 평론가의 글이니 딱딱하겠구나 생각과 다르게 따뜻한 문장이 와닿는다. 저자는 7~8년 동안의 글을 모아보니 슬픔에 대한 것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1부에서 5부까지 전부 슬픔에 관한 글은 아니다. <슬픔에 대한 공부>는 1부에 실려 있다.
  문학 모임에서 책에 수록된 박형준의 시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를 읽게 되었다. 
  “그 젊은이는 맨방바닥에서 잠을 잤다/창문으로 사과나무의 꼭대기만 보였다//가을에 간신히 작은 열매가 맺혔다/그 젊은이에게 그렇게 사랑이 찾아왔다//그녀가 지나가는 말로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그는 그때까지 맨방바닥에서 사랑을 나눴다//지하 방의 창문으로 때 이른 낙과가 지나갔다/하지만 그 젊은이는 여자를 기다렸다//그녀의 옷에 묻은 찬 냄새를 기억하며/그 젊은이는 가을밤에 맨방바닥에서 잤다//서리가 입속에서 부서지는 날들이 지나갔다/창틀에 낙과가 쌓인 어느 날//물론 그 여자가 왔다 그 젊은이는 그때까지/사두고 한 번도 깔지 않은 요를 깔았다//지하 방을 가득 채우는 요의 끝을 만지며/그 젊은이는 천진하게 여자에게 웃었다//맨방바닥에 꽃무늬 요가 펴졌다 생생한 요의 그림자가/여자는 그 젊은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사과나무의 꼭대기,/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여자가 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슬픔의 척도는 다르지만, 맨방바닥과 오지 않는 여자가 차갑고 슬펐다. 누구는 너무 가난해서 오지 않는 거라고 했다. 천진난만하게 바라보는 남자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다 영영 떠났을 여자의 마음은 또 어떠했을까. 사과나무 꼭대기를 올려다보며 날마다 울었을 남자가 너무 슬프다고 했다.
  글을 쓰기 위해서 어떤 책을 읽을 것인지 고민 먼저 하게 된다. 애써 고른 책도 의도와 다르게 반대로 읽고 나서 쓰게 된 경우도 많다. 글을 쓰는 시간은 내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어주듯이 글을 쓰는 시간을 나에게 충분히 내어줬을까. 작가는 많은 책 중 몇 권을 고른다면 소설일 것. 시적일 것. 짧을 것을 권한다. 
  신형철 하면 문학평론가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소설이나 시집을 읽고 뒷장에 다다르면 꼭 읽게 되는 해설이다. 평론가들은 한 작품을 세 번 이상 읽고 쓴다고 한다. 작품이 어려워서 읽게 되는 해설을 굳이 어렵게 해석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신형철 평론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진은영 시인처럼 난해한 이미지들은 똑 부러진 해설을 통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정답은 없다. 어떤 해석이든 나한테 잘 듣는 약이면 된다. 

홍혜향<혜윰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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