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훈<국민의힘 상록갑 당협위원장>

‘하늘이 노했다, 하늘에 구멍이 뚫렸다, 양동이로 퍼붓는 비, 게릴라성 폭우….’
이번 장맛비에는 위의 표현 외에 ‘도깨비 장마’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신출귀몰하는 도깨비에 빗댄 표현이다. 게다가 처음 듣는 ‘극한 호우’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만큼 이번 장맛비가 짧은 시간에 수많은 인명피해를 주었기 때문이다. 이번 장맛비로 인한 인명피해는 주로 경북과 충청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중대본은 전국에서 호우로 인해 모두 46명이 숨지고, 4명이 실종됐다고 밝혔다. 산사태 등의 피해가 컸던 경북에서는 모두 27명이 숨지거나 실종됐고, 충북의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 등으로 충북에서도 17명이 숨졌다.
정부와 소방, 경찰, 군 당국이 예천에서 실종 주민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굴착기, 덤프트럭 등 수많은 장비를 투입해 수색 작업에 막바지 안간힘을 쏟고 있다. 수색은 산사태로 매몰 사고가 일어난 감천면, 급류에 휩쓸려 주민이 실종된 은풍면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이 와중에 안타까운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보문면 내성천 보문교 일대에서 실종자 수색 작업에 나선 해병대원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 헬기와 드론 등을 동원해 수색했지만 끝내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귀신 잡는 해병, 기적처럼 돌아오길 바랐지만,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경북에서는 예천(사망 15명, 실종 2명)군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정부는 집중호우 피해지인 예천군, 청주시 등 13개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가족을 잃고 집과 농경지를 잃은 수재민의 상처가 하루속히 아물 수 있도록 최선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실종된 사람 구조에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고, 호우피해 농가지원과 함께 농작물 수급 관리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예천의 아픔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진다. 산사태처럼 와르르 무너지고 있다. 대통령도 이런 산사태는 처음 보았다며 빠른 시일 내 복구할 것을 약속했다. TV에서 보여주는 예천의 사고지역 모습마다 내 지난 시절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저곳은 학창시절 친구들과 뛰놀던 곳이었는데, 저 내성천에서 개헤엄을 치며 물놀이를 했던 곳인데….’
예천은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이다. 그리움이 파노라마처럼 살아나오는 곳이다. 정자나무 한 그루, 산과 들, 하천, 골목길마다 그리움으로 숨 쉬는 곳이다. 용문사, 회룡포, 용궁면의 뿅뿅다리, 삼강주막, 선몽대, 석송령, 학가산 등 눈만 감아도 선하게 나타나는 고향이다. 내 어린 시절의 꿈과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힘들 때마다, 지칠 때마다 고향 예천을 생각하면, 절로 삶의 희망이 살아나오는 곳이다. 삶의 활력소를 주는 곳이다. 족대로 하천에서 물고기를 잡던 곳, 반딧불이를 잡으러 다녔던 계곡, 참외와 옥수수 서리하러 이웃 마을까지 원정 가던 곳…. 기억 너머 잠들어 있던 그리움들이 산사태와 함께 한 겹 두 겹 되살아나온다. 가슴이 먹먹하기 그지없다.
예천군은 이번 호우로 사망한 주민을 애도하는 기간을 지난 21일까지 정해 슬픔을 함께 나누었다. 26일은 안산 관내 영남향우회 회원들이 예천으로 봉사활동을 떠난다. 입술을 꾹 깨문다. ‘고향의 추억을 걷어내고 온몸이 흠뻑 젖도록 삽질을 해야겠다.’
그러나 기다릴 수가 없었다. 23일 새벽, 지인과 함께 예천으로 향하고 말았다. 눈앞의 참사 현장에서 넋을 잃고 말았다. 산사태로 길이 무너지고, 집과 축사도 속절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듯싶어 부랴부랴 중장비를 들여놓고 밤늦게 고향을 뒤로 했다. 넋을 잃은 주민들, 그러면서도 서로 슬픔을 함께 나누려는 주민들의 모습이 자꾸만 뒤따라왔다.
“저는 안산으로 향하지만, 26일 관내 영남향우회 회원들과 다시 올 것입니다. 오늘 본 것을 밑바탕으로 체계적인 봉사활동을 할 것입니다. 언제 우리가 그랬느냐는 듯 힘차게 일어나서 재난으로부터 당당한 예천으로 비상할 수 있도록 제 조그만 힘을 모두 쏟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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